《“속이 타 들어갔어요. ‘돈 안내도 좋으니 그냥 참여한다고 서명만 하고 직원들에게 직장보육시설이 있다고 알려 달라’고 업체들을 설득했지만 “직원 중에 애 있는 집이 2, 3명밖에 안 된다”며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귀찮은 업무가 늘어날까봐 꺼리는 분위기였죠.”
대전 유성구 관평동 대덕테크노밸리 내에 있는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 박현숙 원장은 2008년 어린이집 출범 당시 상황에 대해 “앞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번듯한 직장보육시설을 지었는데 막상 참여해야 할 기업들은 직장보육시설에 관심도, 의지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화그룹 시설 지원했지만 “애 있는 직원 몇명 안된다” 기업들 처음에는 시큰둥 “믿고 맡기면 업무도 잘돼” 직원 요청에 하나둘씩 참여 교사-지역주민 함께 육아… 어르신도 주1회 ‘특별교육’
○ 45개 업체가 함께하는 직장보육시설
뿌리와 새싹 어린이집은 대전 대덕테크노밸리 인근 45개 업체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직장보육시설이다. 2008년 11월 개원 당시 18명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94명으로 늘어났다. 4명에 불과하던 교사도 14명으로 늘었다. 신입 원아를 받는 3월을 앞두고 참여 절차를 묻는 기업들의 문의도 줄기차다.
개원 전 이 지역에는 사설유치원 두세 군데와 가정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소규모 놀이방이 있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들은 비용과 안전 문제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 고마운 기업이 나타났다. 한화그룹의 자회사인 ㈜대덕테크노밸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단지 내 직장보육시설을 만드는 데 쓰라며 716m² 규모의 대지를 내주고, 2층짜리 어린이집을 무상으로 지어줬다. 소프트웨어는 교육 전문가에게 맡겼다.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이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교사를 뽑았다.
순조로울 것 같았던 공동 직장보육시설 운영은 참여 기업들을 모집하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테크노밸리 안과 인근 기업 600여 곳에 공문을 보내고 직접 찾아갔다.
반응은 차가웠다. 설명회를 열었을 때 그나마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인 곳은 10군데밖에 없었다. 20∼40명 규모의 소규모 업체들은 자녀를 맡길 만한 직원이 고작 두세 명뿐이어서 직장보육시설의 필요성을 생각조차 못했던 터라 무관심했던 것이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전략을 바꿨다. 기업의 윗선을 만나는 대신 아이를 가진 직원들을 직접 접촉하며 어린이집을 홍보했다. ‘맨투맨 마크 전략’이었다. 직장보육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직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직원들이 거꾸로 기업에 참여 요청을 하자 기업들이 성화에 못 이겨 하나둘씩 가입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업체가 45곳.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이들이 모여 제법 규모가 큰 직장보육시설을 꾸려낸 것이다.
직장보육시설에 아이들을 보낸 부모들의 만족도는 기업의 예상보다 컸다. 대전직업능력개발센터에 근무하는 김연희 씨는 아들 이용현 군(4)을 어린이집에 맡기면서 육아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떨쳐냈다. 어린이집이 개원하기 전에는 아이를 입주형 베이비시터에게 맡겼으나 불안감이 컸다. 김 씨는 “어린이집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아이와 떨어져도 일에 더 열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올해 둘째를 계획하고 있다. 직장보육시설이 이 부부에게 준 것은 바로 육아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처음에는 부정적이던 기업들도 최근엔 직원들이 부담하던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해 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 아버지와 동네 노인도 함께 한다
뿌리와 새싹은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직장보육시설 중 우수한 사례로 뽑혔다. 뿌리와 새싹은 원아들의 아버지와 동네 어르신들이 함께 참여하는 보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육아에서 무관심하기 쉬운 아버지들도 끌어들였다. 아버지 들만의 친목 모임도 자발적으로 생겼다. 준기(6)의 아버지 이충욱 씨가 ‘밥이나 한 번 먹자’며 모임을 주선했다. 처음에는 머쓱해하던 아버지들도 모임이 한두 차례 이어지자 속으로 고민하던 육아문제를 술술 털어놨다. 건물 바깥에 있는 토끼장도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깨끗한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자며 모래판을 뒤엎어 말끔하게 청소했다. 아이들이 생태현장으로 가는 나들이 길에 차가 너무 빠르게 달린다는 얘기가 나오자 구청에 횡단보도를 내달라는 ‘바짓바람’도 일으켰다.
18일 찾은 ‘뿌리와 새싹’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여섯 분이 들어왔다. 옆 건물의 노인정에 다니는 ‘할아버지’들이었다. ‘할아버지’들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오목판과 윷을 꺼냈다. 옆방에서 술래잡기를 하던 김태린 양(6)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윷놀이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슬쩍 옆자리에 앉았다. ‘뿌리와 새싹’에는 나무 팽이를 기막히게 돌리거나 ‘공기놀이’를 척척 해내는 원아들이 종종 눈에 띈다. 다 동네 어른들한테 배운 것이다.
아이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동네 어르신들에게 구연동화를 듣거나 민속놀이를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갖는다. 날씨가 좋은 날은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손을 잡고 함께 나들이를 간다. 박 원장은 “아이들은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나 전통놀이를 좋아한다”며 “어르신들과 함께하면서 아이들도 정서적 안정감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직장보육시설 만들때 정부 지원은 ▼
설치비 최대 5억 주고 저리 융자도… 교사 인건비는 1인당 80만원까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고 싶은데….”
시설을 설치할 때 정부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준비해야 할 비품은 무엇인지,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는 기업이 많다. ○ 무상지원, 세금감면 등 혜택
고용보험에 가입한 기업이 직장에 보육시설을 설치하면 정부로부터 상당액의 설치비와 운영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설치비는 건물을 보육시설로 변경하거나 기능을 보강할 경우 소요 비용의 최대 80%(사업주는 2억 원, 공동 설치는 5억 원)까지 무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영·유아 보육에 필요한 교육 비품 및 장비 구입 비용도 최대 60∼80%(5000만 원 이내)까지 무상 지원해준다.
융자도 된다. 시설 건립비, 건물 매입비, 임차비, 개보수비, 시설전환비 등의 목적이면 최대 7억 원까지 5년 거치 5년 균등 분할 상환으로 받을 수 있다. 이자는 중소기업은 연 1%, 대기업은 연 2%. 단, 토지 매입비는 융자에서 제외된다. 사업주가 무상지원이나 융자를 받으려면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각 지사(행정복지팀)나 직장보육시설지원센터(부산 051-328-5272∼5)로 연락하면 된다.
보육교사 등의 인건비도 1인당 최대 80만 원까지 무상 지원받을 수 있다. 단, 유급 고용일이 매달 20일 이상이어야 하며 매달 말일 기준 보육아동이 20명 이상이어야 한다. 인건비를 신청하려면 전국 고용지원센터(기업지원과)로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세제 감면 등 간접 혜택도 볼 수 있다. 지방세법상 사업주가 직장보육시설에 직접 사용하기 위해 부동산을 살 때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 사업소세를 면제해준다. 2012년 12월 31일까지 직장보육시설을 신축 또는 구입할 경우 취득금액의 7%를 공제해준다. 고급 사진기 및 보육용 기자재는 개별 소비세를 면제해주고 소득세법에 따라 보육시설 운영비를 필요 경비로도 인정해준다.
○ 무료컨설팅 해드립니다
그러나 이 같은 과정이 기업에 쉽지는 않다. 동아일보는 ‘아이와 함께 출근해요’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업을 대상으로 직장보육시설 무료 컨설팅 서비스를 실시한다. 컨설팅은 직장보육 전문 기업인 ‘모아맘’과 ‘푸른보육경영’이 함께 진행한다. 모아맘은 KT 본사와 한국가스공사 본사, 서울아산병원, SK C&C 늘푸른어린이집, LG전자 가산어린이집 등 31개 직장보육시설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푸른보육경영은 포스코(포항), 현대중공업, 나텔레콤, 엔씨소프트, 롯데삼강, SK에너지 등 40개 직장보육시설을 위탁운영하고 있다. 직장보육시설 설치를 결정한 기업에 대해서는 △사전검토 △설치준비 △설치단계 △설치완료 등 4단계로 컨설팅을 해준다. 기업과 직장보육시설의 규모에 따라 짧게는 1,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이 걸린다.
신만동 모아맘 대표는 “중소기업은 직장보육시설 설치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방법만 잘 찾으면 싸게 시설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승현 푸른보육경영 사무국장도 “설치비용을 따지기 전에 기업 대표가 결단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중소기업의 문의를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두 컨설팅 업체는 △직접 사내에 시설을 만드는 모델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하는 모델 △위탁보육업체를 이용하는 모델 중 각 기업에 맞는 최적의 방안을 찾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02-555-5062(모아맘), 02-581-8554(푸른보육경영)
<특별취재팀>
▽팀장 김상훈 교육복지부 차장 ▽산업부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사회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교육복지부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오피니언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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