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밴쿠버겨울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이 화제다. 예상치 못한 금메달이 3개나 나왔기 때문(2월 26일 현재). 첫 ‘사고’를
친 인물은 모태범 선수(21·한국체대). 2월 16일 남자 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7일 같은 부문 여자
500m에서도 이상화 선수(21·한국체대)가 금메달을 땄다. 모두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해당 부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이들 ‘밴쿠버의 스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아니다. 이들 뒤엔 ‘강한 부모’가 있었다. 모 선수의 아버지 모영열
씨(51)와 어머니 정연화 씨(49), 이 선수의 아버지 이우근 씨(53)를 밀착 취재했다. 이들은 자녀의 어떤 모습에서
‘싹’을 발견했을까?》
[모태범 선수 부모의 교육법] “운동을 하는 재미와 목표를 잃지 않도록 항상 믿어라”
지난달 24일 찾아간 경기 포천시 모태범 선수의 집.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진열장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는 모 선수가 어린 시절부터 받았던 상장과 메달이 가득했다. 아버지 모영열 씨는 “이 상장과 메달은 아들을 믿고 지원해 줄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했다.
모 선수가 ‘스케이팅 선수’를 꿈꾸며 정식으로 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한 건 초등 3학년 때. 아버지 모 씨는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 있는 시간보다 아이들과 어울려 공을 차러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며 “일찍부터 자신에게 맞는 적성과 소질을 찾고자 운동을 시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운동으로 진로를 결정한 후 부모는 ‘운동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아들의 성격’을 꼼꼼히 살펴봤다. 평소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질색을 하는 모습과 더불어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아들에게서 본 모 씨. 이런 성격 때문에 아들에겐 상대방을 이기려고 몸싸움을 마다 않는 축구, 농구, 쇼트트랙 같은 종목보단 개인 성적에 집중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스피드스케이팅이 적합할 것이라 판단했다. 또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종목을 선택했을 때보단 쉽게 지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들도 이런 결정을 묵묵히 따랐다.
부모는 아들의 노력과 똑같은 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다. 오전 4시 반에 일어나 오전 5시부터 2시간 반 동안 진행되는 아들의 훈련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함께 갔다. 매일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들이 그날 작성한 훈련일지를 함께 살펴보며 ‘어떤 부분을 고쳐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더 훈련해야 하는지’를 얘기했다.
어머니 정연화 씨는 “부모는 운동 전문가가 아니므로 훈련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런 훈련방법을 따라 해라’ 같은 충고는 자제했다”면서 “아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듣고,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들이 얼마나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지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엔 아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재미’뿐 아니라 스케이트를 타는 ‘목적’을 잃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아버지 모 씨는 항상 “남들과 똑같이 해선 발전할 수 없다. 발전하지 못한다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때로는 다그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모 선수에게 혹시 부담이 되진 않았을까? 아버지는 “어느 날 우연히 아들 휴대전화 배경화면에 내가 했던 말이 써있는 걸 봤다”면서 “친구로부터 ‘놀자’는 연락이 와도 휴대전화 화면에 써진 문구를 보며 자제하는 모습이 대견했다”고 말했다.
아들이 비인기종목을 진로로 삼은 탓에 미약한 지원과 열악한 훈련환경 등 난관도 많았다는 모 씨. 그는 “태범이의 금메달이 다른 후배 선수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상화 선수 부모의 교육법] “결과에 집착하기보단 즐거움이 될 수 있게 도와줘라”
500m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 하지만 이어 출전한 1000m에선 출전선수 36명 중 23등이란 성적을 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하는 내내 그의 목소리는 밝았다. 스스로 “23등하고도 이렇게 인터뷰하는 선수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이상화 선수의 긍정적인 모습은 “결과에 개의치 말고 스케이트 자체를 즐겨라”고 습관처럼 말하는 아버지 이우근 씨의 교육철학에서 비롯됐다.
초등 1학년 때부터 오빠의 영향을 받아 취미로 스케이트를 시작한 이상화 선수.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 3학년 초에 스케이팅을 접어야 했다. 이 씨는 스케이트를 대신할 취미로 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어느 날 교내에서 하는 피아노 콩쿠르에 부모 모르게 신청서를 냈더군요. 피아노학원 원장 선생님도 ‘아직 대회 나갈 수준은 아니고 그럴 만한 소질도 없어 보이니 기대하지 말라’고 했고요. 그런데 몇 달 동안 피아노만 두드리며 살더니 은상을 타더라고요. 이때 ‘뭘 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거면 열심히 해내겠구나’라고 확신했죠.”(이 씨)
초등 3학년 겨울방학 때 이 선수가 “다시 스케이트를 타고 싶다”고 조르자 이 씨는 고민 없이 딸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이후 아버지는 생활패턴을 딸에게 맞췄다. 매일 오전 5시 10분까지 종합운동장으로 가 ‘벨트를 허리에 차고 뛰기’ ‘제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뛰기’ 같은 근력운동을 하는 딸의 모습을 지켜봤다. 오전 7시 훈련이 끝나면 학교로, 수업이 끝난 후에는 오후 4시 반까지 다시 종합운동장으로 데려다주고 오고를 반복했다. 저녁에 친구들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모두 거절하거나 주말로 약속을 미뤘다.
운동뿐 아니라 학업에도 신경을 썼다. 이 씨는 “훈련 때문에 수업에 소홀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기본소양은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때 사용한 방법이 독서”라고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엄마 어렸을 적에’라는 전집을 사줬다. 또 지방이나 외국으로 훈련을 가거나 대회에 참가할 땐 ‘일상생활영어’처럼 어학능력을 기르는 책을 사줬다.
‘즐기며 운동하라’는 말 외에는 큰 잔소리나 주문 없이 그저 믿고 지원을 해준 이 씨. 그는 “딸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부모만의 특별한 교육법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딸이 운동하는 것을 믿고,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결과가 좋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그만 둬라’고 말해선 안 돼요. 항상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줘야죠. 이번 올림픽도 꼭 금메달을 바라진 않았어요. 그저 딸이 웃으면서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행복해하는 것, 그게 부모의 역할 아닐까요?”(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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