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다른 동에 수감된
도박 친구에 전달하려 한 듯
“나를 죄인이라 하지마라”
감방 벽에 글 썼다고도 밝혀
회삿돈 1898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된 전 동아건설 자금관리부장 박상두 씨가 구치소에서 쓴 편지. 이 편지에는 횡령 자금 중 일부를 박 씨가 아직 가지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나를 작다 하지 마라. 내 주먹만 한 심장에 한을 담고 있음이니. 나를 죄인이라고 하지 마라. 바깥에 있는 자들보다 더 맑을걸. 지닌 것은 없으나 얻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회삿돈 1898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전 동아건설 자금관리부장 박상두 씨(49)의 ‘옥중서신’ 중 한 대목이다. 박 씨는 구치소 감방 벽에 이런 글을 써놓았다고 했다. 하룻밤에 수십억 원대 도박판을 벌인 ‘강남 박 회장’다운 대담함이 엿보인다.
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이 편지는 같은 구치소의 다른 동에 수감돼 있는 ‘도박 친구’ 김모 씨(43)에게 보내려던 것으로 추정된다. 공책 한 장을 조심스레 반으로 찢은 쪽지를 세 번 접어 돌돌 말았다. 새끼손가락만 해진 쪽지를 펼치자 앞뒤로 빽빽한 편지글이 보였다. 필체는 차분했다.
박 씨는 지난해 7월 회삿돈을 들고 잠적했다가 3개월 뒤에 붙잡혔다. 지금은 성동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씨는 박 씨와 함께 수백억 원대 도박판을 벌이고 박 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지난해 10월 구속됐다. 도피 중이던 박 씨와 유일하게 접촉하며 대포폰을 구해주기도 하는 등 박 씨의 횡령 과정과 도주 행각을 밝혀줄 주요 인물로 지목됐다.
편지는 “여기서 새해인사는 ‘건강하세요’란다. 좋은 뉴스 전해주라. 하루빨리 나가서 챙겨야 할 사람도 많은데…”라는 인사로 시작된다. 박 씨는 재판 상황, 가족문제, 향후 구상 등을 자세하게 적었다.
편지에는 박 씨가 빼돌린 회삿돈의 일부를 숨겨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도 있었다. “농장은 큰 걸로 해줘. 제주도에 하나, 여주·이천에 하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경기 이천에 있는 동서 친구의 포도밭에서 박 씨가 빼돌린 돈 중 3억5000만 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 씨는 실제로 구치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땅 사러 다니느라 바쁠 텐데 돈 좀 있으면 같이 투자하러 다니자”라는 이야기를 수시로 했다고 한다.
또 한 부분에는 “○○이가 변호사를 보내 왔는데 △△에게 17개 받을 게 있단다. 그래서 내가 합의해주면 50%씩 나누자는 오퍼가 왔다. 내 대답을 듣고 자수할 건지 결정한단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받을 돈이 있는데 이를 나누자는 것. 17개의 뜻은 확실하지 않지만 박 씨의 씀씀이로 볼 때 17억 원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결과 박 씨가 은닉한 재산은 고급 빌라 두 채 등 부동산과 현금 등을 합해 모두 78억여 원 상당이었다. 앞서 횡령으로 구멍 난 자금을 메우려고 돌려막기식으로 다시 회사에 입금한 돈을 빼면 실질적으로 박 씨가 착복한 돈은 974억 원 정도다. 검찰은 박 씨가 카지노 등에서 모두 350억 원을 쓴 사실을 밝혀냈지만 그 이상은 꼬리가 잡히지 않았다. 숨겨놓은 돈이 더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계속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박 씨는 여러 차례 김 씨에게 먼저 교도소에서 나가라고 강조했다. “넌 무조건 조건 없이 빠른 시일 내에 나가야 돼. 무조건.” “일단 나가라. 나가서 돈 받을 놈 빨리 찾아내서 죽이든 살리든 조치해주라.” 박 씨가 은닉한 돈의 많은 부분이 다른 사람에게 빌려준 돈으로 발견됐는데 이런 방식으로 숨겨둔 돈이 더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 씨는 “와이프 혼자서 앞으로 몇 년을 살지”라며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표시했고 “(편지) 심부름을 하는 애들은 맛있는 거 사줘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박 씨는 처음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밝혔던 것처럼 편지에서 자신의 형을 10∼15년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변호사에 대한) 1심의 성공보수는 구형 15년, 선고 10년이다. 항소 7년이고.” 박 씨에 대한 검찰의 구형은 12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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