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에세이]기후변화 보고 주식 투자하는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0일 03시 00분


2006년 집을 한 채 샀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며 아파트 값이 크게 떨어지는 바람에 낭패를 본 일이 있다. 예상치 못했던 일에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자산가치의 변동은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제 금융계에선 또 한번의 자산 재평가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 기업에 벌금이 부과되기 시작하면 기업 가치가 빠르게 재조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 말 미국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업가치 재평가 가능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치가 있었다.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업들의 기후변화 관련 영향 공시(公示)를 의무화한 것이다. 이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졌다. 이제 미국 상장(上場) 기업들은 기후변화 관련 4대 영향요소인 온실가스 규제, 국제협약, 비즈니스 트렌드 변화, 이상기후 증가로 인한 사업 영향을 분석해 투자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 정보를 공개하면 기후변화 리스크가 큰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질 수 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회사에 대한 우려는 1990년대부터 제기되어 왔다. 투자기관들은 공동으로 탄소정보 공개 요구서를 만들어 2003년부터 기업들에 정보를 받아 왔다.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22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들이 이런 투자자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들 기업과 달리 과도한 탄소 배출 등 경영 리스크를 숨겨왔던 기업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몇 년 전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석탄화력발전소 투자를 요청한 기업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다. 탄소 발생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석탄화력발전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조건으로 투자를 허락했다. 이런 일들이 일반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이다.

사실 기후변화 관련 규제가 경영성과에 미치는 단기적인 영향은 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몇 년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점진적으로 강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의 주가(株價) 등 자산가치는 다르다. 장기적인 리스크가 인식되는 순간 단시간 내에 크게 조정될 수 있다. 아파트 가격처럼 말이다.

한국에도 기후변화의 위험에 노출된 기업이 많다. 주식 투자자들은 자신이 보유한 자산에 대해 고탄소 자산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지는 않은지 기후변화 리스크를 살펴봐야 할 때다.

김지석 주한 영국대사관 기후변화담당관

※김지석 씨는 미국 예일대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대자동차 연구원을 거쳐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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