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학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나는 가족 앞에서 선언했다. “등록금은 내 손으로 벌겠습니다.” 첫 아르바이트는 엑스트라였다. 당시 인기를 끌던 KBS 사극 ‘제국의 아침’과 ‘무인시대’에 각각 오른팔과 뒤통수로 데뷔했다. 48시간을 일하면 14만 원을 받았다. 꼬박 한 달을 일해서 모은 돈은 등록금의 절반이 채 안됐다. 어쩔 수 없이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다.
입대 전까지는 편의점에서 주말에 야간 근무를 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편의점을 지켰다. 시급은 3000원. 한 달을 졸음과 싸우면 24만 원을 손에 쥐었다. 방학이 되면 낮에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투잡족으로 변신했다. 다행히 그때는 방학에만 일해도 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제대하고 나니 등록금은 70만 원이 올랐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좋은 여건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투자해야 했으므로 치열한 정보전을 펼쳤다. 공부보다 일자리 검색에 공을 더 들이는 나를 발견할 때면 씁쓸했다.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할 양이 늘어나면서 다른 데 투자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등록금은 계속 인상됐다. 학기 중과 방학에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해도 등록금을 내기가 버거웠다.
작년 12월 나는 은퇴를 결심했다. 대학생활의 마지막 1년마저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취업 준비에 쏟을 시간이 필요했다. 1학년 때 스스로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등록금을 위한 길고 긴 7년간의 노동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아직도 전국에는 등록금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가 가득하다. 누구든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런 상황을 만들지 못한다.
“이건 왜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줄을 몰라. 아니 등록금이 무슨 우리 아빠 혈압이야?” 얼마 전 ‘개그콘서트’의 ‘동혁이형’ 코너에 나온 말이다. 꽃 같은 10학번 후배들이 졸린 눈을 비벼가며 편의점에서 바코드 찍을 생각을 하니 변하지 않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 대학이여, 등록금 좀 깎아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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