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까지 불밝힌 실험실, 그는 마약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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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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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립대 재직 中 칭화대 출신 중국인 교수의 ‘이중생활’

‘물뽕’ 6400만원어치 제조
경찰이 고객 가장 인터넷접촉… 오토바이 타고와 건네다 잡혀
“여자친구 생활비 마련하려… 내가 잠시 미쳤던 것 같다”

“며칠 동안 제가 미쳤던 것 같습니다. 정말 죽고 싶습니다.”

서울 모 사립대 화학과의 중국인 교수인 A 씨(32)는 평소 부지런한 교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중국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칭화(淸華)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도교수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고 2008년부터 이 학교 전임강사로 일해 왔다. 부임 이후에도 주요 학술지에 논문 4편을 제출했고 항상 밤늦게까지 일해 동료 교수와 학생들은 연구에 매진하는 젊은 교수로만 여겼다.

하지만 젊고 유능했던 중국인 교수의 ‘이중 행각’이 드러났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대학 실험실에서 직접 마약을 만들어 인터넷으로 판매하려 한 A 교수와 이를 받아 복용한 후 유통시키려 했던 다른 중국인 B 씨(26·여)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교수는 지난달 26일부터 자신의 실험실에서 마약인 ‘GHB’ 320g(시가 6400만 원 상당)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마약은 속칭 ‘물뽕’으로 불리며 음료에 넣어 복용하면 약물효과가 나타난다. 24시간 안에 약물 성분이 빠져나가 사후 추적이 힘들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흔히 파트너를 흥분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마약이라고 해 ‘데이트 강간 약물(Date rape drug)’로 통한다. 국내에서도 유흥업소 등에서 몰래 집어넣어 성폭행 범죄 등에 사용된 사례가 있다.

화학과 교수 같은 전문가에게 GHB 제조는 간단한 일이었다. 마약 원료인 G물질을 실험실에 설치된 장비에 넣고 손쉽게 제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A 교수가 주로 사람이 없는 늦은 밤에 마약을 만들었고 심지어 실험실에 다른 연구원이 있을 때도 태연히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연구를 하는지 잘 모르는 대학 연구실의 특성을 악용한 셈이다.

경찰은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한 중국 채팅 사이트에서 최음제나 마약 등을 거래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후 마약 구입자로 가장해 A 교수와 직접 접촉했다. 지난달 26일 받은 ‘샘플’이 진짜임을 확인하고 3일에는 GHB 320g을 통째로 들고 나온 그를 검거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서울역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와 돈을 받으려다 현장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여자친구의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며 “내가 잠시 미쳤던 것 같다”고 후회했다. A 교수의 여자친구는 현재 서울 모 여대 1학년에 다니고 있는 중국 학생이다. 여자친구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경찰에 말했다.

A 교수가 재직한 대학 관계자는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려 하지 않았던 점을 제외하면 연구 활동이나 교수 능력 모두 탁월했다”며 “지금도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8일 A 교수를 해임했다.

경찰 관계자는 “GHB를 만드는 원료인 G물질은 2008년 마약 원료로 지정된 후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이 까다롭지만 대학 실험실 등은 비교적 느슨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마약 제조물질을 취급하는 대학 연구소 등에 이 같은 마약 제조 사례가 더 있는지 추가 조사할 계획이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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