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비리 축소판’ 조리전문특성화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2일 03시 00분


합격자 바꿔치기… 돈 받고 교사 채용… 국고보조금 횡령… 납품업체 리베이트…
교장등 2명 영장 - 34명 입건

요리사를 꿈꾸는 학생들의 꿈을 꺾은 ‘교육비리의 축소판’이었다. 입학생 바꿔치기, 지원금 횡령 등 각종 교육비리로 얼룩졌던 한 조리전문 특성화고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1일 입학점수를 조작해 합격생을 탈락시키고 기숙사비를 비롯한 교내 예산을 빼돌리는 등의 혐의(업무상 횡령 등)로 경기 시흥시 소재 사립 한국조리과학고 교장 진모 씨(73)와 교무부장 이모 씨(45)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또 비리에 가담한 혐의로 교감 정모 씨(54) 등 학교 관계자 20명, 경기도의원과 납품업체 관련자 14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10학년도 신입생 전형을 진행해 228명의 최종합격자를 선정한 상태였는데도 ‘같은 재단 중학교 출신과 남학생 등을 우대하라’는 교장의 지시가 내려지자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를 바꿔치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미 합격한 학생 15명의 면접 점수(30점 만점)를 1∼7점씩 깎아내리고 불합격한 15명의 면접·적성·목적의식 점수를 1∼13점 높인 것. 이에 따라 118등으로 여유 있게 합격했던 학생은 정작 불합격 통지를 받은 반면 462등으로 합격권에서 한참 떨어져 있었던 학생이 195등으로 이 학교에 입학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렇게 합격한 학생들이 그에 대한 대가로 금품을 건넸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계좌 추적을 하고 있다.

또 이들은 납품업체 리베이트, 국고보조금, 기숙사 운영비 등 3억1700여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라 교장 진 씨는 2003∼2008년 교사채용 과정에서 8명으로부터 2억3000만 원을 받기까지 했다. 교사들은 “채용해주겠다”거나 “기간제에서 정규교사로 전환해주겠다”는 교장의 말에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5000만 원을 건넸다. 그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난해 2월 경기도의원 황모 씨(50·여)에게 400만 원의 뇌물을 건네는 한편 학교 근처의 용지를 매입하고 아들의 미국 유학자금을 댔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진 교장이 부인을 이사장에, 조카를 사무국장에 앉히는 등 친인척 5명을 주요 보직에 임명해 수년간 부정한 돈을 축적했다”며 “보조금 횡령에 채용 장사, 부정입학, 공직자 매수 등 최근 문제가 된 교육비리의 축소판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경찰은 진 씨 등이 비리로 마련한 자산을 함부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재산몰수 보전 신청을 하고 수사 결과를 경기도교육청에 통보할 예정이다.

한편 경기도교육청은 2008년 학교운영비 횡령을 적발해 한 번 징계조치했을 뿐 이 학교의 조직적인 비리 상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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