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새로운 이름 ‘중2병’, 왜 널리 쓰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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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5일 18시 49분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대개 중학교 1~2학년생들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은 대개 중학교 1~2학년생들이다.
"도대체 인수분해 따위가 내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지?"라고 묻는다.
"샐러리맨만큼은 절대 되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다.
사회와 역사 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나서 갑자기 '미국은 더러워' 라고 말한다.
환경문제에 적극적이 되고 현실을 알면 바로 절망한다.
프로를 엄격하게 비판하며 자신이 하면 더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온라인상에서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글이 발견되면 곧장 이에 대한 짤막한 비판 댓글이 따라 붙기 마련이다.

"중2병이시군요."

▶기존의 사춘기랑 무엇이 다를까?

최근 '중2병'이란 신조어가 누리꾼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에서는 '중 2병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한다'는 기발한 설문지까지도 함께 관심을 끌고 있다.

'중2병'이란 실제 15살 내외의 학생인 중학교 2학년의 정신상태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용어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그렇듯 만사에 시큰둥해지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꼬마철학자로 변모하며, 자연스럽게 그 탈출구로 게임이나 소설 속의 영웅을 모방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중2병'이란 사춘기 소년 소녀가 흔히 갖기 쉬운 "자신이 다른 세계 사람이며,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그런데, 간단하게 '사춘기'로 설명하면 그만일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한 신조어로 표현한 것일까?

먼저 이 단어의 출발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용어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 건너온 말이다. 우리 청소년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본문화 확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당초 한 일본의 개그맨이 라디오에서 '중학교 2학년생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행동들'을 어떤 병의 증상이라고 희화화하고 청취자들로부터 사연을 모집해 탄생시킨 개그코너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일본의 게임 게시판이나 NT(인터넷)소설 등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고, 최근 제작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정식으로 '중2병'이 언급되면서 당당한 신조어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 국내 청소년들에 영향력 있는 일본 대중문화

일본에서 유행한 '중2병'을 국내에서 유포한 1등 공신은 다름 아닌 일본계 NT소설이다.

국내 서점가에서도 급부상한 장르가 바로 이 분야다. 인터넷 소설로 불리기도 하는 NT소설이란 원래 뉴타입(New Type) 소설의 약어로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쓴 소설을 지칭한다.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쓰다 보니 NT소설의 타깃 역시 민감한 감성을 지닌 중학생에 집중된 것도 한 특징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대부분이 중학교 1~2학년생들이라는 점. 신지와 아스카로 널리 알려진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기동전사 건담의 아무로 역시도 15세 내외였다.

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민감한 사춘기에 '전쟁'이나 '폭력'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님'의 권력에 저항하거나 '이성간의 사랑'을 두고 고민하는 하는 모습은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들에게 큰 공감을 받았다. 결국 이들 문화의 소비자인 청소년들도 소설 속의 주인공을 따라하는 모습을 비친 것.

▶ 온라인 등장 이전이 '사춘기' 이후는 '중2병'

사춘기 시기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성(性)적인 관심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성적인 자각을 하는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이전에 비해 훨씬 앞당겨졌다. 다름 아닌 인터넷 등 확산된 뉴미디어의 영향으로 비친다.

때문에 사춘기와는 조금 다른 형태의 표현이 요구됐다는 것. 그것이 바로 '중2병'이라는 해석이다.


흔히 중학교 2학년쯤의 청소년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대단히 독특하고 특별한 아이라고 느끼곤 한다. 때문에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고독을 숭고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이 나를 절대 이해 못한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단순한 사춘기가 아닌 그 또래의 질병을 뜻하는 '중2병'란 표현이 한국에서 널리 쓰이게 된 또 다른 이유로는 기존의 사춘기와 다른 행동을 드러내는 신세대들의 온라인적 특성과 무관치 않다.

게시판 내에서 분란을 일으키거나,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건의 주동자들이 대개 중학생 미성년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남들과 완전히 다른 존재임을 내세우고 자신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증상도 나타난다. 상대방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하고 자신만의 논점만을 내세우거나 비논리적인 주장을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한국적인 중2병의 특징이다.

때문에 '중2병'이란 과거 인터넷 초창기 분란을 주도했던 '초등학생(초딩)의 습격'과 비슷한 속성을 지니기도 한다.

일본과 한국에서의 어의가 조금 다른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에서 '중2병'이란 '철이 안든 시절에 한 번쯤 겪을 법한 홍역'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자신의 이력을 되돌이켜 보건데 한때나마 '중2병을 앓았던 때가 있었다'는 식의 반성적이며 회고적인 태도로 사용되는 것.

그러나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뜻이 변질되어 '무개념, 허세' 등으로 풀이되며 남을 비난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사춘기 애들이나 할 법한 무개념한 행동'이나 '짜증나는 모습'을 가리키는 등 욕에 가까운 표현으로 사용된 것도 한 특징이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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