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이 병상 구술한 글 2편이 15일 공개됐다. 출판사 문학의숲 고세규 대표는 “스님이 이달 말 부처의 전기 ‘불타 석가모니’와 보조국사 지눌의 마음 다스리는 법에 대한 책 ‘수심결’을 재출간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2010년 봄 법정’이라고 쓴 두 책의 서문은 법정 스님이 남긴 마지막 글이 된 셈이다.
‘불타 석가모니’는 일본 불교학자 와타나베 쇼코가 쓴 부처의 전기다. 고 대표는 “개정판 발간에 앞서 스님이 병상에서 서문을 구술하신 뒤 간병인이 받아 적은 것을 마지막까지 교정을 보셨다”고 했다. ‘수심결’은 법정 스님이 젊은 시절 번역하고 절판된 지 25년 된 것을 새롭게 역해한 것이다.
이 책 2권은 편집과 삽화까지 완성된 상태지만 출판사 측은 “내 이름으로 낸 모든 출판물을 더는 출간하지 말기를 부탁한다”는 법정 스님의 유지가 알려지면서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고 대표는 “저작권 계약은 10년 전 작성한 것이며 유지가 확인되는 대로 출간 작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법정 스님의 상좌인 덕현 스님(서울 길상사 주지)은 저작권과 관련해 “법정 스님의 유언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문제가 정리될 것”이라며 “(저작권이) 엉뚱한 쪽으로 정리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1일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법정 스님 추모법회가 취소됐다. 길상사 측은 15일 “추모법회는 일체의 장례 의식을 하지 말라는 법정 스님의 유지에 맞지 않는 것을 뒤늦게 깨달아 추모법회를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49재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초재부터 6재가 17일∼4월 21일 매주 수요일 길상사에서 열리고, 49재는 4월 28일 전남 순천시 송광사에서 열린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불타 석가모니’ 서문
나 자신 부처님 제자로서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1계로서 살생금지를 받들며 살아왔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없다. 그런 계율을 몰랐다면 얼마나 많은 허물을 지었겠는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거듭 형성되고 재결속될 수있다. 출가해서 반세기 넘게 지금까지 부처님의 제자로서 살아온 것이 고마울 뿐이다. 불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지닌 감화력으로 불타 사후 2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삶의 기준이 없다면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이다. 불타 석가모니는 우리 삶이 나아가야 할 기준이며 지향점이다. 여기 불타 전기로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와타나베 쇼코의 ‘불타 석가모니’를 새삼 재출간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2010년 봄 법정
◇‘수심결’ 서문
인간의 업이란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한번 깨달았다고 해서 수백 생의 습(습관)이 사라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수행으로 완성된다. 설령 이치로는 알았다 해도 실제 현상에서는 실천하지 못한다. 수행이란 ‘행行’이 그 근간이 되어야 한다. 역대 조사와 선지식들은 한결같이 깨달음과 함께 끝없는 수행으로 그 모범을 보인 까닭이 거기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한소식(수행력이 한 단계 높아진 상태)했다고 해서 막행막식莫行莫食(마구 행동하고 먹는 것)을 한 예가 없다. 인과가 역연因果亦然한데, 한소식했다고 해서 놀아나서는 안 된다.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행할 수 있으며, 바른 행을 통해서 사람은 거듭 형성되어 나간다. 그 가르침에 있어서 깊은 호소력과 진실성을 담고 있는 보조 스님의 ‘수심결’은 불교 수행자들만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지침서가 될 뿐 아니라 우리 불교가 탄생시킨 뛰어난 경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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