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이 유배 직전
정순왕후와 마지막으로 이별했다는 서울 청계천 영도교. 1865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에 필요한 석재를 확보하기 위해 철거한 이
다리를 서울시가 2005년 청계천 복원사업으로 되살렸다. 사진 제공 서울시
조선 6대 임금인 단종과 그의 부인 정순왕후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21세기 서울 청계천 한복판에서 주목을 받게 됐다. 서울시설공단은 강원 영월군과 교류협력을 체결하고 단종과 정순왕후가 이별한 청계천 영도교(永渡橋) 주변 바닥에 동강에서 채취한 청정 하천석을 깔기로 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청계천에서 단종 관련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영도교 하류에 두 사람의 사연을 담은 조형물(가칭 ‘500년 만의 해후’)을 설치하는 데도 협력하기로 했다.
단종은 조선시대 비운의 왕이었다. 아버지 문종을 일찍이 여의고 12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밀려 영월로 유배를 떠나야 했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헤어지기 직전 청계천 중류 영도교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으로 서로의 얼굴을 기억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다리 위에서 이별한 뒤 다시는 못 만나 당시 백성들이 ‘영영 이별다리’, ‘영영 건넌 다리’라고 불렀다. 그 당시 그렇게 부르던 이름이 ‘영원히 건너가신 다리’라는 의미인 현재 영도교 명칭의 유래가 됐다.
두 사람은 헤어져서도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했다. 마치 섬과 같은 구조로 나룻배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청령포로 귀향 간 단종은 동강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부인을 떠올렸다. 단종이 유배된 뒤 궁궐에서 추방된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숭인동 동망봉(東望峰) 기슭에 초막을 짓고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단종이 16세가 되던 1457년 사약을 마시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자 정순왕후는 매일 아침저녁 소복 차림으로 산에 올라 단종이 떠난 영월을 향해 통곡을 했다. 동망봉이라는 이름도 정순왕후가 동쪽을 향해 통곡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시설공단 측은 “단종의 숨결이 남아있는 동강의 하천석을 영도교 아래에 깔아 외롭게 살다 간 정순왕후와 다시 만나게 해준다는 의미”라며 “30∼50cm 크기의 하천석 약 600t을 동강에서 기증받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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