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내가 배울 과외선생님, 내가 ‘검증’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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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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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번에도 그냥 그랬어. 나랑 스타일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냥 다른 과외샘(과외선생님)으로 알아봐줘.”

서울 Y고 2학년 김모 군(17)은 일주일 사이 과외를 하러 온 여대생 3명을 돌려보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의아했다. 면접을 봤던 강사 모두 명문대 출신에 친절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하지만 아들은 어김없이 퇴짜를 놓았다. 다음 후보는 중학교 때 미국에서 거주한 적이 있다는 중위권 대학의 영어교육과 여대생. 영어회화가 능통하다기에 면접을 봤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웬일? 김 군이 단번에 승낙하는 것이 아닌가. 김 군은 “미모가 되는 선생님과 공부하면 공부가 더 잘될 것 같아서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면서 “이번 과외 샘은 (여배우) 윤진서를 닮았다”고 말했다.

속칭 ‘SKY’ 대학 출신에 과외 경험이 많은 족집게 강사. 학부모들이 자녀의 과외선생으로 선호하는 전형적인 유형이다. 자녀에게 이런 선생을 추천하면 자녀는 마지못해 부모가 하자는 대로 과외를 시작할지 모른다. 문제는 좋아하지 않는 선생과 공부했다가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면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과외를 그만두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 학생들은 어떤 과외 선생을 좋아할까. 어떤 선생과 공부할 때 공부 효율이 극대화될까.

요즘 학생들은 과외 선생을 고를 때부터 까다롭다. ‘나를 가르칠 선생님은 내가 고른다’는 주관이 확실하다. 강사에 대한 검증도 스스로 한다. 고3 김모 군(18)은 과외를 시작한 지 단 두 달 만에 학교 영어내신 시험 점수가 85점에서 100점으로 뛰었다. 김 군의 과외선생은 서울 중상위권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는 남자 대학생이다. 김 군은 “과외선생과 학생을 연결하는 온라인 사이트에 강사의 화려한 경력이 공개되지만 절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군의 과외선생은 같은 이과생인 사촌형의 고3 때 과외선생이다. 김 군은 형의 수능 모의고사 외국어영역 성적이 70점대에서 90점대로, 영어내신이 3등급에서 1등급으로 수직상승한 것을 눈여겨보았다가 그 선생에게 직접 연락했다. 김 군은 “점수가 오른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믿고 따라하면 내 성적도 오를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탁월한 강의는 기본, 학생의 니즈(needs)를 콕콕 집어 보완해주는 유형도 인기가 높다. 선생이자 친구, 형, 부모의 역할을 아우르며 학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천후 도움을 준다. 지친 수험생의 생일에 종합비타민을 선물로 챙겨주는 센스를 발휘하거나 공부에 집중하라며 여자친구와 잘 헤어지는 법을 소개하고 경쟁과 질투가 심한 여학생 사이에서 ‘열공’(열심히 공부한다는 뜻)하면서도 반에서 왕따가 되지 않는 법을 전수한다.

3월 13일 다음 날이 화이트데이인 것을 깜박 잊었던 고3 박모 군(18). 여자친구에게 줄 사탕을 사러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빠져나가려니 관리감독이 삼엄한 학기 초라 쉽지 않았다. 박 군은 긴급히 과외하는 형에게 문자를 날렸다. ‘형! 여친(여자친구) 줄 사탕 준비하는 거 완전 까먹었어요.;;’ 형에게 온 답신. ‘내 거 살 때 하나 더 샀다. 야자시간엔 딴 생각말고 공부만 하랬지. 이따 과외할 때 갖다 줄게.’ 박 군은 “그냥 수업만 하는 선생님보다 형처럼 공부 열심히 하라고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는 선생님이 좋다”고 말했다.

‘중간고사 때 100점 맞으면 피자 쏠게’와 같은 동기부여 방식은 요즘 학생들에겐 식상하다. 여고생들은 대학에 입학해 몰라보게 변신한 과외선생의 ‘Before & After’ 사진을 통해 확실한 자극을 받는다. Y대 경영학과 소모 씨(24·여)는 “과외하는 여고생에게 고등학교 때 한참 살찌고 망가진 사진을 보여주면서 너도 대학 가면 10kg은 금방 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금세 눈빛이 열의로 반짝인다”면서 “여기에 ‘꽃 미남’ 또는 ‘훈남’(‘훈훈한 남자’의 줄임말)인 남자친구 사진까지 공개하면 이보다 더 좋은 동기부여가 없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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