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用 안되게 ‘임금피크 차등제’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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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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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표준모델 내달 마련… 한국감정원 실패를 반면교사로
자리엔 불만, 일은 대충대충…신규채용 안늘고 효율 저하
관리직 경력 살릴 업무 주고 급여삭감 편입후도 성과평가

부동산 감정을 주 업무로 하는 공공기관인 한국감정원은 200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3년 만에 이 제도를 없앴다. 공공기관과 민간 기업을 통틀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첫 번째 사례였다. 고참 직원들에게 정년을 지나서도 일할 기회를 주고 젊은 직원들을 전진 배치해 조직의 활력도 살리기 위한 취지였지만 상하관계 역전에 따른 위화감, 단순 업무에 배치된 대상자들의 불만 등 부작용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은 최근 임금피크제가 확산되는 추세에 맞춰 기존의 문제점을 보완해 이 제도를 재도입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다음 달 발표될 예정인 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표준모델’을 참고해 시행착오의 소지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인건비를 줄이면서 일자리를 늘린다는 임금피크제의 본래 취지를 살리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표준모델에 담는다는 계획이다. 한국감정원의 사례에서 보듯 정년을 맞는 모든 직원에 대해 일괄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 업무 효율성 저하와 인건비 상승은 물론 젊은 층의 고용 기회 박탈의 우려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 연공서열 벽에 막혀 실패


한국감정원은 2004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정년을 58세에서 59세로 연장하는 대신 급여를 깎았다. 첫해는 기존 임금의 80%, 2년차에 70%, 3년차에 50%를 주는 식이었다. 실무자들에게는 기존 업무를 그대로 하게 했지만 관리직에게는 현장에서 부동산 시세를 조사하는 일을 맡겼다.

그러자 후배 밑에서 단순 업무를 맡게 된 관리직들이 “간부로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업무를 달라”고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후배들도 직전까지 상급자였던 선배를 지휘해야 하는 상황을 난감해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한국적 기업문화를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결국 한국감정원은 2007년 11월 노사 합의를 통해 제도를 없앴다.

한국감정원이 이번에 임금피크제 재도입 방침을 정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도 관리직의 처우 문제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매년 임금피크제에 본부 처·실장과 점포장이 7, 8명 포함되는데 이들을 어떻게 대우할지가 관건”이라며 “관리직 사이에서도 조금씩 지위가 내려가는 것을 용납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회사 측도 직위 유지 여부 등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어 예전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근로의욕 유지할 직무 개발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지 못한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평소 열심히 일하던 직원들도 임금피크제에 편입된 순간 ‘이제 직장생활을 정리하는 단계’라는 생각에 자세가 달라졌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회사는 인건비 부담을 다소 덜었지만 효율성은 기대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정부는 임금피크제 적용 이후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임금피크제가 무분별한 정년 연장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한국감정원도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 매년 20, 30명이 편입되면서 조직 내 분위기가 급속하게 흐트러졌다. 대상자들이 늘면서 “일단 정년이 연장됐으니 적당히 일하자”는 분위기가 퍼졌고, 조직 내 위계질서가 흔들리면서 내부 통솔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업무 숙련도가 높은 사람에 대해서만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임금 삭감 비율도 업무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임금피크제를 통해 일률적으로 정년을 연장하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경영평가 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국감정원도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이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직무를 개발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특히 관리직에 대해서는 근로의욕을 상실하지 않도록 경력과 전문성을 인정하고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할 계획이다. 또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임금피크제 편입 후 성과를 평가해 급여에 차등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익성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 인사조직본부장은 “지금까지는 한꺼번에 후선에 발령을 내다 보니 근로의욕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앞으로는 임금피크제 대상자들을 위한 직무를 직군별로 2, 3개씩 개발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일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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