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선 초중고교의 화두 중 하나는 교장공모제다. 교육계의 인사 비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면서 교육 당국이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장공모제를 확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교장공모제를 확대한다고 하면 ‘교육계 출신이 아닌 외부의 참신한 인사가 교장으로 부임해 학교를 확 바꾸는 것’이라고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교장공모제 확대의 방향은 그처럼 획기적이지 않다. 특성화학교 등 소수의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일반학교는 여전히 교장자격증이 있어야만 교장이 될 수 있는 ‘초빙형 교장공모제’를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장공모제가 교육 비리 개선에 도움이 되려면 좀 더 유연하고 개방적인 제도 운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다.》 ○ 아직 생소한 교장공모제
교장공모제는 지난 정부에서 교육 개혁을 담당했던 교육혁신위원회가 2006년 8월 만든 ‘교원정책개선방안’에서 시작돼 2007년 9월 처음으로 시범 도입됐다. 교장공모제가 도입되기 전에는 엄격한 연공서열에 따라 평균 28년 이상 재직한 교원들이 교장으로 승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육 당국은 이렇게 경직된 승진 제도가 교단의 발전을 막는다고 보고 교장 응모 자격을 대폭 완화했다.
교장공모제는 크게 초빙형, 내부형, 개방형의 3가지로 나뉜다. 초빙형 교장제의 경우 교장자격증 소지자만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기존의 교장 임용 체계와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 일반학교의 경우 내부형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교장자격증이 없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 경력 15년 이상을 쌓으면 일반 초중고교의 교장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일반학교 중에도 농어촌 지역 학교나 자율학교에만 적용된다는 한계가 있다. 개방형의 경우 교장자격증은 물론 교육경력도 요구하지 않지만 특성화된 일부 중고교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교장공모제는 지금까지 390여 개 학교에서 시범실시됐다. 1, 2차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의 권고에 따라 내부형 비율이 절반을 넘었지만 3차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학교가 초빙형을 선택해 교장공모제의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공모교장 50%로 늘려
교육 당국은 최근 교육비리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교장공모제 확대를 첫 번째로 앞세웠다. 장학사나 장학관 등 전문직의 교육 비리는 결국 ‘노른자위 학교의 교장’이 되려는 과정에서 빚어진다는 판단에 따라 교장 인사를 뜯어고치겠다는 전략을 짠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수차례 공모제 확대 방침을 밝혔다. 1월에는 현재 5% 수준인 교장공모제를 10%로 늘리겠다고 했고, 3월에는 이를 5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2일 발표한 서울 교육발전 대책을 통해 국공립 초중고교의 교장을 모두 공모제로 임용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50% 이상이라는 규정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침 수준에 불과하다. 시도교육청이 이보다 작은 규모로 교장공모제를 운영해도 규제하거나 50%를 지키도록 강제할 근거가 없다. 교과부는 교장공모제가 법제화되면 관련 법안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각 시도교육청에 일정 비율 이상을 공모제로 운영하도록 규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한계는 교육 당국이 확대하겠다는 교장공모제가 초빙형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초빙형은 교장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결국 기존의 교장 임용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교장자격증을 딸 정도라면 이미 시간적으로나 구조적으로 교육계의 관행에 익숙해진 인사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교육계의 관행에 물들지 않은 참신한 인사를 발탁해 학교 개혁을 꾀한다는 교장공모제의 확대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현재 교장공모제를 시범실시한 학교들의 경우 초빙형 교장들은 대부분 기존 교장과 근무 연수나 경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격증 요구 초빙형, 기존과 큰 차이 없어 대부분 학교서 선택… 도입취지 못살려 젊은 교사 발탁 내부형, 경영전문 개방형 일반계 학교로 확대해야 비리근절 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당국이 초빙형 교장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초중등교육법 등 관련 법이 일반학교의 교장에게 교장자격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다. 법 개정이 선행되지 않는 한 일반학교에서 내부형이나 개방형 공모제를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교원단체들이 ‘무자격 교장을 양산한다’는 이유로 교장공모제를 반대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자격증 없는 교장을 임용하면 학교 경영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며 교장공모제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초빙형 공모제가 기존 교장들의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일반 교장은 연임 제한이 있는 반면 4년 임기인 공모제 교장은 중임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8년 이상 교장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시범실시 단계에서는 교장 임기가 1∼3년 남은 일반 교장을 다시 초빙형 교장으로 임명해 교장직을 연장시키는 학교도 있었다. 3차 시범실시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시범학교로 지정된 13개 학교가 일제히 초빙형으로 운영해 임기 연장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교과부는 교장공모제가 시범실시된 지 4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중임 제한 규정을 악용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교장공모제가 여전히 폐쇄적이고, 임기 연장 수단으로 변질될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교과부는 “외부 전문가 임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는 하되 우선 초빙형 교장의 인력풀을 키우겠다”며 “뛰어난 교장이라면 한 학교에서 3차례 이상 중임을 허용하는 것이 오히려 교장공모제의 취지를 살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 교장공모제가 성과 내려면
교육 당국의 의도대로 교장공모제가 교육 비리 개선에 일조하게 하려면 일반계 학교도 내부형 비율을 대폭 늘리고, 과감하게 개방형 교장까지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 경력이 없더라도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학교 경영에 전문성이 있다고 인정받은 민간 전문가들을 교장으로 활발하게 영입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육 비리 척결뿐만 아니라 학교 발전에 근본적인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일반학교에서 내부형이나 개방형을 도입하려면 관련 법안들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데 장기적으로 그런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자율학교나 특성화학교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내부형, 개방형 교장이 많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단 허용된 초빙형의 경우에는 기존 교장 임명제도와 차별화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젊고 유능한 교사가 교장이 되는 통로로 활용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현재 1급 정교사자격증 소지자의 경우 교사 3년, 교감 자격 취득 이후 3년 등 총 6년 이상의 교육경력을 쌓으면 교장자격증을 딸 수 있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30대 교장도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선 학교에서도 학교 경영과 개혁에 열의가 높은 젊은 교사를 과감히 교장으로 기용하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젊은 교장과 나이든 평교사들이 한데 어울려 일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초빙 교장은 “일반 교장들에 비해 몇 년 일찍 교장이 되다 보니 교장 모임에 가도 어색하고, 나보다 선배 격인 평교사에게 업무 지시를 하기가 껄끄러운 면이 있다”며 “나이 든 평교사들이 수석교사 등 다른 보직을 통해 전문성을 갖고 교장, 교감과 동등하게 일하도록 하는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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