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옆자리에는 밥과 다슬기 해장국, 김, 계란부침이 담긴 식판이 놓여 있었다. 봄나물도 있었다. 식판이 올려진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빈자리를 보고 아버지는 말했다. “아들아. 생일 축하한데이. 마이(많이) 묵어라. 마이 묵어라….”
25년 전 아내를 잃은 뒤부터 아들 생일상을 차리는 일은 늘 아버지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날 아버지는 ‘주인 없는 식판’을 바라보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2일 아침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 식당에서는 특별한 생일상이 차려졌다. 지난달 26일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천안함 실종자 신선준 중사(29)의 아버지 신국현 씨(59)가 이날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맞은 아들의 생일상을 손수 차려준 것이다.
“특별히 식사 1인분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오늘이 아들 생일이다 보니. 그런데 막상 빈자리에 놓인 식판을 보니 눈물만 나는군요.”
신 중사의 생일은 양력으로 3월 23일이지만 집에서는 음력 생일(2월 18일)을 지내다 보니 올해는 4월 2일이 생일이 됐다. 아버지는 신 중사가 입대한 이후 그동안 한 번도 생일을 함께하지 못했다. 어느새 8년이 지났다. 울산에서 올라온 아버지는 “입대한 뒤 아들 생일상을 한 번도 차려주지 못한 게 이렇게 한이 될 줄은 몰랐는데…”라며 울먹였다.
“생일날 그 차가운 바닷속에 있을 생각을 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져요. 마지막으로 전화라도 한 번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이날 신 중사의 생일을 축하했다. 오후 4시에는 신 중사의 고모와 고모부가 빨간색 상자에 담긴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아버지 신 씨가 있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찾아왔다. 가족들은 케이크에 통닭 한 마리, 그리고 소주 한 잔을 앞에 놓고 신 중사의 생일상을 차렸다.
멀리 울산 집에서는 누나 신영선 씨가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를 아침 밥상에 올렸다. 이날은 신 중사의 생일이자 누나의 출산예정일이었다. 이날 출산하지 않은 누나는 울면서 동생의 생일을 맞았다.
사건이 일어난 지 딱 일주일이 된 2일. 영선 씨는 자신의 미니홈피 일기에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남겼다.
“선준아. 생일 축하해…. 다들 니가 돌아오길 기도하는데…. 도대체 넌 어디 있는 거야? 오늘은 돌아올 거지? 누나 점점 더 힘들어. 갈 수도 없구…. 이제 그만 돌아와….”
바닷속에서 맞은 신 중사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을 가족들은 각자 다른 곳에서 축하했다. 이들은 재개된 수색 작업에 희망을 걸고 하루라도 빨리 신 중사가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주인 없는 신 중사의 인터넷 미니홈피에는 622명의 사람이 찾아와 축하했다.
평택=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문규석 중사도 상사 승진 ▼
해군은 천안함 침몰 사건의 실종자인 김태석 중사(38)에 이어 문규석 중사(36)도 예정대로 상사로 승진시켰다고 2일 밝혔다.
군 인사규정에 따르면 행방불명자 등은 진급을 승인하지 않고 복직 이후 인사를 단행하지만 해군은 김 중사 등이 천안함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실종된 상황을 감안해 진급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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