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 달러 수수의혹 사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는 일요일인 4일에도 3명의 판사가 모두 출근해 밤늦게까지 방대한 분량의 공판기록을 면밀하게 살펴봤다. 9일 오후 2시 선고를 앞두고 이제는 유무죄의 심증을 굳히고 판결문을 작성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장인 김 부장판사는 공판 과정에서 여러 차례 “정치적인 이 사건을 법에 따라 판결하려 한다”고 강조해왔다. 6·2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돼 있는 이 사건을 철저하게 증거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얘기다. 재판부는 그동안 공판을 진행하면서 나름의 판단기준을 엿볼 수 있는 발언도 했다. ○ 곽영욱 전 사장 진술 신빙성 있나?
지난달 22일 사상 유례없는 총리 공관 현장검증 때 김 부장판사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돈봉투를 겹쳐서 놓았느냐, 아니면 일렬로 해서 식탁 방향으로 놓았느냐”며 의자 위 돈봉투의 위치와 방향까지 꼼꼼하게 물었다. 5만 달러를 건넸다는 곽 전 사장의 진술이 구체성이 있는지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자금 추적이 불가능한 달러화로 돈이 오갔다는 것이어서 재판부로서는 곽 전 사장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가장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달 18일 6차 공판에서 검찰 측에 “돈을 건넨 행위를 특정하라”며 공소장 변경을 권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이 법정에서 “의자 위에 돈봉투를 놓았다”고 진술하자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강조했다. 반면 검찰은 “돈을 건넨 방법이 더욱 구체화된 것일 뿐 돈을 건넸다는 점에는 일관성이 있다”고 반박해 왔다.
○ 5만 달러의 출처는?
김 부장판사는 지난달 8일 첫 공판에서 “이번 사건은 다른 뇌물사건과 달리 뇌물자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수사가 안 돼 있다”고 언급했다. 대개 뇌물 제공자의 진술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 뇌물사건에서는 뇌물 자금의 출처가 분명하다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정황증거로 채택된다.
이번 사건의 경우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평소 8만∼10만 달러를 갖고 있었고 한 전 총리에게 건넨 5만 달러도 이 돈의 일부”라고 밝혀왔다. 2005년 7월 곽 전 사장이 사장직에서 퇴임할 때에는 정기적으로 비자금을 상납해온 이국동 당시 부산지사장에게서 한꺼번에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지만 예금 인출이나 환전 기록같이 출처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물증은 없는 상황이다. 김 부장판사의 언급도 이런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뇌물이 현금이나 달러화로 건네진 경우 출처나 사용처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비자금을 조성해 달러화로 건넸다는 이국동 씨의 법정 증언 등을 통해 5만 달러의 출처는 상당 부분 입증됐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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