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돈되는 입학사정관 전형”… 사이비 컨설팅이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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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6일 03시 00분



《학교성적 최상위권인 고2 아들을 둔 학부모 A 씨(서울 강남구 대치동)는 지난해 같은 학교 어머니 모임을 통해 ‘입학사정관제 대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준다’는 한 컨설팅 업체를 알게 됐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점차 확대된다는 뉴스에 뭐든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A 씨. 업체에서 만들어준다는 ‘스펙’이 아들이 평소 관심 있고 대학에서 전공하고 싶은 분야에 관한 것인 데다 프로그램에만 참가하면 각종 대회에서 장관상이나 국회의원상을 받게 해준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상담시간에 컨설팅업체 원장은 300쪽이 넘는 고급스럽게 제본된 책 한 권을 보여주면서 “우리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1년간 스토리가 있는 비교과 활동을 통해 모든 학생이 이런 자서전을 한 권씩 만들 수 있다”면서 “아드님이 다니는 학교 학생들은 특별히 서울대 대비반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참가비는 8회 컨설팅에 총 55만 원이었다. 2회 강의가 진행됐을 때 업체는 은근슬쩍 업체에서 진행하는 해외체험활동에 참가하도록 강권했다. “진로에 대한 분명한 관심과 열정이 보이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선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A 씨는 “회당 500만 원을 웃도는 유럽, 미국, 일본 체험활동프로그램은 마치 정규 프로그램처럼 편성되는 바람에 이 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머지 강의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잇속을 챙기느라 원하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추가할 것을 강요하는 업체를 더는 믿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중3-고1 학부모가 주요 타깃
연 수백만∼수천만원 요구
콘텐츠-정보 상당수 부실
인터넷 카페 수준 그치기도

대입 전형에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됨에 따라 학부모들 사이에선 ‘비교과 활동과 포트폴리오가 합격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상이 더욱 높아졌다. 대학 측에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한 학생, 진로와 관련되면서도 학교 교과과정 중심의 활동을 한 학생을 선발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학부모로선 ‘명확하고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드러나지 않는 이상 뭐든 하나라도 더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더는 똑같은 영어점수, 수상실적만 갖고는 경쟁력 있는 포트폴리오가 되기 어렵다는 불안감에 전문 컨설팅업체를 찾는다. 특히 중3, 고1처럼 당장 수능에 직면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다른 스펙을 만들 시간적 여유가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입학사정관제 대비 컨설팅에 관심이 높다.

이 틈을 타 ‘S대에 입학할 수 있는 맞춤형 스펙을 만들어주겠다’ ‘입학사정관 전형에 최고의 스펙인 장관상을 받게 해주겠다’면서 고액의 컨설팅 비용을 요구하는 일부 입학사정관제 대비 컨설팅 업체가 학부모들을 현혹하고 있다. 주로 정보에 취약하면서 자녀교육에 관심이 높은 학부모를 공략한다.

문제가 있는 입학사정관 대비 컨설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높은 비용을 요구하면서 정작 콘텐츠는 부실하다는 점이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본격 시작된 지 몇 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를 대비하는 입시 컨설팅은 학원비처럼 통상적인 시장가격이 형성되지 않았다. 컨설팅의 특성상 개인적이고 맞춤형으로 진행되는 만큼 가격도 천차만별. 서울 강남의 한 컨설팅 업체에서 상담을 받았던 학부모 이모 씨(42·여·서울 강남구)는 “기본 컨설팅 비용은 연간 수백만 원으로 정해져 있지만 엄마들의 차림새를 보고 어떤 엄마에게는 2000만 원까지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최상위권의 경우 특정 명문대 대비반을 만들어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고가(高價)에 비해 컨설팅 프로그램의 질(質)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고1 아들을 둔 주부 B 씨(45·서울 강남구 삼성동)도 최근 한 컨설팅 업체를 찾았다. 비용은 연간 600만 원. 원장은 “요즘 교육정책의 핵심 키워드가 자기 주도학습이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학습계획을 짜주고 스펙이 될 만한 경시대회, 비교과 활동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등록 후 한 달 동안 제공한 것은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성 e메일과 국내에서 열리는 전공 관련 경시대회 일정을 알려주는 문자메시지뿐이었다. B 씨는 “처음엔 굉장한 정보를 주는 줄 알았는데 인터넷 카페에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실적을 부풀리거나 검증되지 않은 상을 준다면서 학부모들을 현혹하는 업체도 있다. 수상실적 하나가 아쉬운 학부모들은 대회에서 상을 받게 해준다는 업체의 말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한 업체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업체와 연계된 신문에서 학생 기자 활동을 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준다고 약속했다. 취재 결과 이 단체에서 준다는 장관상은 문화부에서 승인한 것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업체는 한 국회의원이 참여하는 기부행사에 학생들을 참여시키고 해당 국회의원 이름으로 상을 주는 방식으로 수상실적을 만들었다.

‘컨설팅의 도움으로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이 있다’고 홍보하는 업체도 주의해야 한다. 한 업체에선 간단히 상담만 받았던 학생의 프로필을 보관했다가 마치 자신들의 컨설팅을 받아 성공한 것처럼 꾸몄다. 주부 박모 씨(서울 강남구)는 “업체 출신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학생에 대해 아는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컨설팅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컨설팅 업체들은 검증된 경로로 자신들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 모임 등 은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접근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임의 한 학부모를 포섭해 팀을 꾸려 컨설팅을 받도록 하는 것. 컨설팅 업체에 자녀를 맡겼다가 프로그램을 중단한 주부 김모 씨는 “기준을 알 수 없는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우리 아이를 명문대에 보낼 수 있다는 호언장담에 어느 엄마가 혹하지 않겠느냐”면서 “정보가 부족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피해자가 없길 바란다”고 말했다.

임진택 대학입학사정관협의회 회장은 “입학사정관 전형은 수상실적 하나로 당락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장관상이든 교장상이든 수상 실적의 개수나 상의 규모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활동에 비춰 평가한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지난해 한 대학에 두 학생이 각각 제출한 포트폴리오가 사진 배열, 편집 양식, 제본 방식까지 비슷해 같은 학원에서 준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면서 “대학에서도 표절, 위조 검사 프로그램 등 강화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대학에 합격시켜줄 것처럼 장담하는 일부 컨설팅 업체의 말에 절대 현혹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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