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전형, 토익-교외수상 실적 배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8일 03시 00분


공교육 활성화 위해 사교육 유발 전형 요소 금지
일부선 “잠재력 측정 봉쇄-내신 위주 평가 우려”

《올해 대학 입시부터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토익 ○○○점 이상’이나 ‘특수목적고 졸업’ 등 지원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 금지된다. 공인어학성적이나 해외 봉사 실적처럼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전형 요소도 활용하면 안 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7일 대학들이 지켜야 할 ‘입학사정관제 운영 공통기준’을 만들어 발표했다.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의 기준이나 원칙이 모호해 무분별한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올해 입시에서는 118개 대학이 3만7628명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다. 4년제 대학 신입생 10명 중 한 명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선발되는 셈이다.》○ 사교육 요소 배제

대교협이 마련한 운영 기준의 주요 내용은 △학교 교육과정 및 활동이 중심이 된 전형을 만들 것 △입학사정관 인원을 늘리고 전문성을 강화할 것 △입학사정관 전형의 구체적인 정보를 학생과 학부모에게 알릴 것 등이다.

대교협은 입학사정관 전형이 공교육 위주로 운영되도록 하기 위해 사교육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전형 요소는 배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토익 토플 텝스 일본어능력시험(JLPT) 중국한어수평고시(HSK) 같은 공인어학시험 성적, 교과 관련 교외 수상 실적, 구술 영어면접 등을 주요 전형 요소로 반영해서는 안 된다. 해외 봉사처럼 사교육 기관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체험활동도 전형요소에서 빼야 한다. 자기소개서나 각종 증빙 서류를 영어로 작성하게 하는 등 간접적으로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는 것도 안 된다.

입학사정관 전형의 취지에 어긋나는 지원 자격 제한도 금지된다. 지난해까지 일부 대학이 입학사정관 또는 특별전형에서 적용한 ‘토익 또는 토플 몇 점 이상’, ‘과학고 졸업자’, ‘물리 올림피아드 입상자’, ‘교외 논술대회 입상자’ 같은 지원 자격을 둘 수 없는 것이다. 일반 고교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심화교과나 전문교과의 이수를 요구하거나, 특정 대학이 개설한 교과 관련 프로그램 이수를 요구하는 것도 금지된다.

대교협은 입학사정관 전형의 공정성과 타당성을 높이기 위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전임 입학사정관 1명이 심사하는 학생 수를 일정하게 제한하고, 전임 입학사정관 대비 위촉 입학사정관 비율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했다. 한 학생을 평가할 때 여러 명의 입학사정관이 참여하도록 하고, 입학사정관별로 점수 차이가 클 경우 다시 평가하도록 했다.

○ 입학사정관제 변질 우려

대교협이 마련한 운영 기준에 대해 대학가에서는 “사교육 억제에는 보탬이 될지 모르지만 입학사정관제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정 분야의 능력이나 잠재력을 평가할 만한 전형 요소를 원천 봉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현행 공교육 시스템이 학생들의 다양한 교외 활동이나 이를 평가할 방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이 학생을 평가할 근거 자료가 무엇이냐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결국 공교육 이외의 전형 요소를 무조건 배제할 경우 어학 특기자는 내신 외국어 성적, 과학 특기자는 내신 과학 성적 등으로만 평가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K대 입학사정관은 “고교 학생부를 들여다보면 학생들의 소질이나 체험활동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기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사교육 우려 때문에 전형 요소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면 입학사정관제가 내신 위주 평가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부를 내실화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일선 고교에서 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교사 한 명이 학생 수십 명의 학생부를 관리하고, 각 대학이 요구하는 추천서나 증빙 서류를 써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교협이 마련한 공통 기준에 강제성이 없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대교협은 ‘각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 요강은 대학입학전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공통 기준을 지키지 않은 대학은 대학윤리위원회의 규정에 따라 조치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대책만 내놓았다. 이에 따라 우수 학생 선발 경쟁이 심한 상위권 대학들의 경우 대교협이 금지한 전형 요소를 활용하거나 평가 과정에서 인센티브를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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