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한 목장에서 풀을 뜯고 있는 야생 노루. 개체수 급증으로 농작물 피해, 생태계 교란 등의 악영향이 나타나면서 인위적인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임재영 기자
6일 오후 6시 제주시 구좌읍의 S목장. 인근 비치미오름, 민오름 등에서 서식하는 야생 노루 20여 마리가 떼를 지어 나타났다. 이들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목장을 누볐다. 초지에서 갓 올라온 새순을 뜯어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노루들이 무리지어 나타나는 모습은 제주에서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야생 노루가 급증해 농작물 피해, 생태계 교란 등의 악영향이 나타나자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주의 야생 노루는 1980년대까지 멸종위기에 몰렸다. 1990년대 들어 대대적인 노루 보호활동 등에 따라 개체수가 급증했다. 대대적인 밀렵 단속과 함께 겨울철 노루 먹이주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결과다. 제주도 환경자원연구원은 제주지역의 노루가 1만2000여 마리까지 불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노루는 주로 고도가 높은 곳에서 사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체수가 늘면서 영역을 확장했다. 겨울철 먹이를 찾기 위해 저지대로 내려온 뒤 목장과 골프장 주변 등지에 새롭게 터를 잡은 것. 고지대로 이동하지 않은 채 콩, 배추, 더덕 등 농작물을 먹어치워 농민과의 마찰도 잦아졌다. 농작물 피해 면적은 2007년 1600ha에 이르렀다. 농민들은 노루가 두려워하는 맹수 배설물을 뿌리고 그물을 설치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제주도는 최근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효율적인 노루 관리를 위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합법적인 포획 등 인위적 조절을 위한 첫 공론화 작업이다. 한상훈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제주 노루는 종 보호단계에서 관리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맞았다”며 “노루에 대한 종합관리계획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루는 세계적으로 유럽노루와 시베리아노루로 분류한다. 국내에 서식하는 노루는 시베리아노루의 아종으로 제주도를 제외하고 육지에서는 관찰하기 힘들다. 제주지역 노루의 km²당 분포는 해발 300∼400m 7.8마리, 해발 400∼500m 14.6마리, 해발 500∼600m 29.1마리 등으로 나타났다. 해발 400m까지는 독일 8.4마리, 오스트리아 8.9마리, 덴마크 9.3마리 등과 비슷하지만 산간지역은 제주지역이 훨씬 밀도가 높다.
유럽 국가에서는 노루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냥 등을 허용하고 있다. 오장근 제주도 환경자원연구원 박사는 “멸종위기에서 회복한 노루를 포획하는 논의 자체가 조심스럽지만 생태계 질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루에 대한 합리적인 관리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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