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초, 송수진 양(15·수원외국어고 중국어과 1·사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성적표를 받았다. 중학생이 된 뒤 처음
치른 중간고사에서 ‘과연 내 성적이 어느 정도 수준일까’ 궁금했던 것. 성적표를 확인한 송 양은 한동안 말문을 잃었다. 전체
430여 명 중 수학 192등, 과학 207등, 사회 133등이었다. 다른 과목도 대부분 이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초
등학교 때 학교수업만 열심히 듣고 공부해도 95점을 받았어요. 중학교에 와서도 똑같이 공부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 수
없었어요.”
놀란 건 송 양의 부모도 마찬가지. 송 양은 부모에게 “수업내용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며 “초등학교
때와 달리 과목마다 선생님이 따로 있는 데다 가르치는 방법도 제각각이라 적응이 안 됐다”고 털어놨다.》
성적표에서 송 양을 기분 좋게 만든 과목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전교 6등’의 영어 성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영어학습지로 영어를 배웠지만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중반부터 다음 해 1월까지 4개월가량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했어요. ‘영어가 이래서 필요하구나’ ‘영어도 꽤 재미있네’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며 부모님이 권유했죠.
송 양은 필리핀 강사에게 하루 6시간씩 일대일 수업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면 30∼40개씩 영어단어를 외웠다. 또 영어동화책이나 영어소설에 딸린 CD를 틀어놓고 해당 책을 매일 1시간씩 읽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와선 오로지 반배치고사 준비만 했어요. 중1 교과서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중학교에 간 거죠.” 이후 송 양은 자연스레 공부와 멀어졌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일이 늘어났다. 송 양은 “어느 날 엄마가 ‘외고 구경 가볼까’ 하고 물으셨어요. 방황하는 저를 보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셨나 봐요. 2곳을 둘러봤는데 그중 수원외고에 막연한 호감을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외고에 대한 관심도 그때뿐. 송 양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원을 거의 다녀본 적이 없었던 송 양은 여름방학 동안 수학 과외를 받았다. 일대일로 수학공부를 계속 하다 보니 자연스레 수학에 흥미가 생겼다. 덩달아 다른 과목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학년 2학기 시험에선 대부분 과목의 성적이 올랐다. 특히 수학은 약 90등, 과학은 130등 향상됐다.
2학년 초, 송 양은 부모에게 “내가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역영재학급 선발시험에 도전해보겠다”고 선언했다. 지역영재학급은 송 양이 다니는 학교를 포함해 인근 3개 중학교 학생 중 수학 과학에 재능 있는 20명을 뽑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 송 양은 “당시 학교성적을 볼 때 부모님조차 ‘무모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송 양의 의지를 기특하게 여긴 담임선생님의 추천 등을 통해 지원자격 기회를 얻었다. 2단계 창의력평가시험, 3단계 수학 과학 시험, 4단계 면접과 토의토론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1년간 일주일에 2번씩 진행되는 과학수업, 주제 발표 수업 등에 참여했다. 학교 성적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송 양은 ‘공부가 재미있다’는 말을 자주 하게 됐다.
3학년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외고 공개투어에 참석해보지 않겠느냐’는 부모의 제안에 송 양은 ‘NO’라고 답했다. 이미 수원외고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기 때문이었다.
“외국어에 관심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비슷한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한다는 점에서 외고 진학을 결심했어요. 그리고 예전에 둘러봤던 ‘수원외고’가 생각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좋은 평가가 많았어요. 특히 제 눈길을 사로잡은 건 교복이었어요.”(웃음)
송 양은 수원외고 교복 사진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매일 오후 8, 9시까지 교실에 혼자 남아 공부했다. 학교 경비 아저씨로부터 “집에 가서 마저 공부하면 안 되겠니? 나도 퇴근 좀 하자꾸나”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항상 초시계를 몸에 갖고 다니면서 얼마 동안 집중해서 공부했는지 확인했어요. 가로등 불빛 아래서도 책을 봤고, 분식점에서 음식 나오길 기다리면서도 공부했어요.”
송 양은 교과서를 전체적으로 살핀 뒤 중요한 내용을 간추려 하나의 그림처럼 외웠다. “그림을 그리듯이 외워두면 재미도 있고 시험 볼 때 기억이 잘 났다”는 게 송 양의 설명.
새로운 내용은 자신과 관련돼 있는 소재를 연결시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예를 들면 ‘황수지’라는 친구 이름에서 ‘수’의 영문 이니셜 S와 황을 연결지어 황의 원소 기호는 ‘S’라고 외운 것. 잘 외워지지 않는 영어 단어의 경우 단어의 발음과 의미를 연결시켜 시각화했다. 예를 들어 ‘scorching’(태워 버릴 듯이 뜨거운)의 경우 사막의 날씨와 ‘scorching’과 발음이 비슷한 ‘scorpion’(전갈)을 떠올렸다. 그런 다음 ‘Scorpion is living in a scorching desert’(전갈이 살이 타는 것 같이 뜨거운 사막에 산다)는 문장을 스스로 만들면서 어휘와 독해 실력을 키워나갔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외고 입시 준비에 돌입했다. 송 양은 “내신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에 영어듣기와 구술면접 준비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학교 성적도 꾸준히 올라 3학년 2학기 중간고사에선 반 3등을 했다.
외고 원서모집을 앞두고 송 양은 부모에게 “중국어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다. “디자인 분야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은데 발전 가능성과 기회가 가장 많은 지역이 ‘중국’인 것 같다”는 생각을 덧붙였다.
“‘모든 사람이 좋은 조건에서 시작할 수는 없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 순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제가 외고 진학을 결정했을 때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결국 해낸 것처럼, 열심히 생활해서 꿈을 꼭 이룰 거예요.”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연락처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