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기온 낮고 일조량 평년의 61% 그쳐 개화 지연
예보 믿고 벚꽃축제 일정 잡은 전국 지자체들 곤혹
英-日은 계절-장기 일기예보 포기… 민간업체 맡겨
‘4월 6일→8일→11일→12일.’ 기상청이 올해 벚꽃이 피는 시기를 맞히려다 세 차례 ‘헛스윙’을 했다. 기상청은 지난달 4일 “올해 벚꽃 개화 시기는 평년보다 6일 정도 빠르고 지난해보다 3일 정도 늦을 것”이라며 “서울에는 4월 6일 벚꽃이 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예상은 2주일도 지나지 않아 수정됐다. 기상청은 지난달 17일 2차 예보에서 개화 예상시기를 이틀 늦춰 4월 8일로 예상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또다시 3일 늦춰 4월 11일로 전망을 바꾸면서 체면을 구겼다. 결국 서울지역 벚꽃은 마지막 관측보다 하루 늦은 이달 12일 개화했다. 당초 예상보다 일주일 정도 늦은 셈이다.
○ 일조량 감소 예상 못해 전망 실패
기상청 예보를 믿고 벚꽃축제 날짜를 잡았던 지방자치단체들은 울상을 지었다. 경남 하동군이 이달 2일 개최한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썰렁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전국이 추모 분위기였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벚나무에 꽃이 10%도 채 달리지 않았던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동군 관계자는 “기상청의 개화 예보 등을 고려해 4월 초로 일정을 잡았지만 꽃이 아예 안 피어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 경주 벚꽃마라톤, 구미 벚꽃축제, 통영 봉숫골 벚꽃축제도 벚꽃이 제때 피지 않아 애를 먹었다.
기상청 예보가 어긋난 것은 올 3월 기온이 유난히 낮고 일조량이 평년의 61%에 그칠 정도로 부족했기 때문. 임재철 기상청 기후예측과 주무관은 “올 3월 날씨가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올겨울 유난히 추운 날씨를 불러왔던 북극진동(北極振動) 현상이 예상외로 계속됐다”며 “특히 남쪽에선 중(中)태평양의 수온이 상승하는 엘니뇨 모도키 현상이 유달리 두드러지면서 대기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과거와 달리 나타난 기상현상들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벚꽃 개화 예보는 3월 온도를 얼마나 정확히 예측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기상청의 오류도 있었겠지만 올해와 같은 경우는 상당히 맞히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달 이상 먼 시점의 날씨를 예상하는 장기 예보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예측 자체를 포기하는 ‘항복 선언’도 이어지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민간 기상업체들과 자존심을 건 벚꽃 개화시기 예보 경쟁에서 몇 차례 패한 이후 ‘55년 전통’인 벚꽃 개화 예보를 올해부터 중단하겠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다. 영국 기상청도 지난해 여름과 지난겨울 예보가 어긋나자 최근 “올겨울은 추울 듯”이라는 식의 계절 일기예보를 올해부터는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기상 예보 시장 구도 단계적으로 바꿔야
일본 기상청의 벚꽃 개화 예보 중단은 국내 기상 예보 시장 재편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 기상청이 벚꽃 개화 예보를 포기한 것은 정확성이 떨어질뿐더러 벚꽃 개화 시점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커져 정부보다는 민간시장에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불확실성이 큰 장기 예보나 벚꽃 개화 전망은 민간업체들이 분담해 시장을 형성하도록 하고 국가기관인 기상청은 기상재해 예방 등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상청이 독점하다시피 하는 국내 일기예보 시장의 구도를 단계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민간업체나 기상 컨설턴트들이 소비자에게 밀착해 세밀한 기상정보를 제공하는 시장을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식 케이웨더 사장도 “날씨 정보의 민감성이 커지는 만큼 민간 기상서비스 업체들이 날씨보험 등을 통해 리스크를 분담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시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정규 기상청 기후과학국장은 “한국의 민간업체들은 아직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제공하기는 역부족”이라며 “일본이 예보를 중단한 것은 지역별로 다른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컸던 만큼 우리는 5개 지방 기상청을 적극 활용해 예보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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