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오대산서 뻗어 충북-대전-충남-서해로… 누님같이 넉넉한 산줄기
오솔길 - 고개마다 사람냄새 ‘물씬’
‘먼 산들을 좋아하지 말자/ 먼 산에는 거짓이 많다/ 시인이여/ 이제는 먼 산들을 좋아하지 말자/…(중략)/먼 산에는 있다/ 허상이.’
시인 고은은 ‘차령산맥’이라는 시에서 먼 산은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먼 산이라는 공간은 거짓이고 허상이라고 했다. 사람과 섞여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까운 산이 진실이라고 했다.
차령산맥은 강원 오대산에서 시작해 충북과 대전, 충남을 지나 서해안으로 빠져나간다. 길이라야 250km 정도, 평균고도도 600m에 불과하다. 국내 산줄기 중 아주 작은 편에 속한다. 게다가 강과 낮은 분지와 구릉 등으로 곳곳에서 맥이 끊어져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늘 가까이 있다. 사람냄새가 깊게 배어 있다.
평균 고도 600m… 낮은분지-구릉 정겨워 지리적으론 수도권과 중부-영호남 경계선
차령은 역사적으로는 고구려와 백제가 맞부닥친 군사적 경계선이었다. 현재에도 차령은 다양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수도권과 중부, 영호남을 가르고 있다. 나아가 서울과 지방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통합과 조화의 의미를 갖고 있다. 1997년 대선에 출마해 대전을 방문한 한 후보는 “차령산맥을 넘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산맥’이라는 용어 대신 대간, 정간, 정맥, 금맥, 지맥이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지질구조(산, 땅)보다는 지표분수계(큰 강)로 산의 흐름을 구분하는 데다 위성영상 및 지리정보 시스템, 실측 자료 등이 도입되면서 그 모습도 종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런 구분에 따르면 종전 차령산맥은 충청지역에선 금강을 경계로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나뉜다.
금남정맥은 전북 장수 장안산에서 시작해 주화산∼왕사봉∼배티∼대둔산∼개태산∼계룡산∼널티∼망월산∼부소산∼금강으로 사라진다. 금북정맥은 한남금북정맥의 끝인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청룡산∼성거산∼차령∼광덕산∼차유령∼국사봉 등 충남을 가로질러 백월산∼오서산∼팔봉산∼백화산∼지령산을 지나 충남 태안 안흥진으로 사라진다.
이들 산은 고산준령인 백두대간에 비해 여유와 후덕함이 있고 자태 또한 부드럽다. 어느 곳이든 느리게 걸으며 자기를 성찰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도 숨이 차지 않는다. 길마다 골마다, 또 고개마다 특유의 소박한 역사와 문화가 있다. 최근에는 위기와 기회를 함께 맞고 있기도 하다. 각종 개발로 신음하는가 하면 옛 모습으로 되돌려놓으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본보는 강원도에서 시작해 충청권을 지나 서해로 뻗어가는 차령골 곳곳, 특히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을 찾아간다. 그 속에서 살던 사람,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개하며 옛 차령의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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