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 깎아 생긴 ‘여유자금’ 엉뚱한 곳 쓰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2일 03시 00분


■ 공공기관 ‘눈가림’ 일자리 나누기
대졸 채용 95곳중 42곳 묵혀두거나 자체 투자
“구조조정 하라며 신입 충원 말이되나” 비판도

지난해 상당수 공공기관이 대졸 초임만 삭감한 채 신규 채용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자 이들 공공기관의 이기적 행태에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공공기관들은 현재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따라 경영합리화 및 인력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태. 대졸 초임 삭감은 경영합리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신규 채용으로 인력이 늘면 구조조정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유령 사원 월급 깎은 공공기관들

한국생산성본부는 지난해 연봉 3597만 원(성과상여금은 제외)인 대졸 초임을 2798만 원으로 799만 원(22.2%) 삭감했지만 대졸 신입사원은 뽑지 않았다. 한국전력공사도 2891만 원에서 15.4% 내린 2445만 원으로 대졸 초임을 깎았지만 대졸 신규 채용은 없었다. 뽑지도 않은 ‘유령 사원’의 임금이 깎인 셈이다.

공공기관 246곳 중 95곳은 대졸자를 채용했다. 그러나 삭감된 임금만큼 생긴 여유 재원을 일자리 나누기에 활용한 곳은 절반이 조금 넘는 53곳에 그쳤다. 시장경영지원센터(3132만 원→2566만 원)는 대졸 신입사원 5명을 채용하면서 생긴 여유자금을 직원 퇴직급여충당금에 사용했다. 대졸 신입사원을 1명 뽑은 한국천문연구원(3189만 원→2594만 원)도 여유 재원을 이사회 승인을 거쳐 자체 사업에 재투자했다. 한국고용정보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석유공사 등 42곳은 대졸 신규 채용은 했지만 발생한 여유 재원을 일자리 나누기 등에 쓰지는 않았다.

○ 상반되는 정책의 딜레마

노동계에서는 공공기관들이 대졸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것이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선진화’와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공공기관들로서는 정규직인 대졸 신입사원을 뽑는 것이 부담이 된다는 것. 실제로 한국중부발전은 2007년 92명, 2008년 11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채용했으나 정부가 ‘공기업 선진화’ 드라이브를 건 지난해에는 뽑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사람을 줄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을 더 뽑으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한 정책 때문에 빚어진 부작용”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공공기관들이 기존 인력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복지부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줄이는 것과 동시에 기존 인력까지 감축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노동부 관계자는 “급여 수준이 높은 기존 인력을 줄이면 급여가 상대적으로 낮은 신입사원을 더 뽑을 수 있다”며 “공공기관들이 기존 인력 보호를 위해 움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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