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시각장애인聯 이승철 연구원과 버스 출근길 동행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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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3일 03시 00분


가다보면 갑자기 끊기는 점자블록
정류소 음성인식 단말기는 ‘먹통’
정류장 노선 안내 단말기 20분 불러도 음성 인식 못해
“만들때 장애인 의견 반영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 이승철 씨(38)는 17일 사무실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공릉동으로 옮겼다. 이 씨는 강렬한 빛과 색은 어렴풋이 구분하지만 흰 지팡이나 남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편한 시력장애 1급이다. 기자는 ‘장애인의 날’(20일) 하루 전인 19일 오전 이 씨와 함께 서울 상계동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공릉동으로 가는 길을 동행했다. 이 연구원의 안전을 위해 동료연구원 이진원 씨(31)도 함께했다.

○ 끊어지는 점자블록… 길 잃기 일쑤

복지관을 나서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동료연구원이 이 씨의 어깨를 감싸 오른쪽으로 슬쩍 밀었다. 이 씨는 빨간 소화전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부딪힐 뻔했다는 걸 몰랐다.

이 씨가 점자블록을 따라 천천히 인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갔다.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지 않아 이 씨가 자전거와 충돌할 뻔했다. 이 씨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갑자기 뒤에서 띠링띠링 벨소리를 울리면서 지나갈 때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고 말했다.

19일 이승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시각장애 1급)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2단지 버스정류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버스노선 안내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이 단말기는 음성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박영대 기자
19일 이승철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연구원(시각장애 1급)이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2단지 버스정류장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버스노선 안내 단말기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이 단말기는 음성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 박영대 기자
1km 이상 걸어 상계백병원 사거리 앞에 다다랐을 때 이 씨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점자블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거리에 나오니 차 소리도 커지고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아 더욱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주머니에서 20cm 길이의 접이식 흰지팡이를 꺼내 편 다음 바닥을 더듬었다. 지팡이 끝에 점자블록 대신 보도 한가운데 설치된 벤치만 걸렸다. 동료연구원은 약 5분간 주변만 두드리는 이 씨의 손을 이끌고 상계주공2단지 버스정류장으로 데려갔다.

○ 음성인식 안 되는 안내단말기


버스정류장에는 버스노선 안내단말기가 있었다. 시각장애인도 음성 인식을 통해 쓸 수 있다고 점자로 적혀 있었다. 점자를 읽은 이 씨는 단말기 마이크에 “공릉역”을 외쳤다. 인식이 되면 버스 번호가 안내되는 단말기다. 하지만 “인식이 안 되었습니다”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공릉역”이라고 20여 분을 불렀지만 허사였다.

이 씨는 검은 바탕에 진회색 계통으로 된 검색화면을 가리키며 “화면 배색에 신경을 썼더라면 저시력자라도 이용이 가능했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울시는 이 버스정류장을 포함해 6군데에서 이 안내단말기를 시범운영 중이다.

공릉동으로 가는 105번 버스가 왔다. 이 씨는 동료의 외침으로 버스가 온 사실을 알았지만 움직이지 못했다. 버스가 어디 서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버스는 정류장을 조금 지나쳐 섰다. 이 씨는 더듬더듬 버스에 올랐다. 자리를 찾아 앉을 때까지 동료 연구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 휘청거리는 이 씨가 넘어질 뻔했다.

이 씨는 “시각장애인은 정보 장애인인데 정보(시각)의 기본인 점자블록이 없으면 밖으로 다닐 수가 없다”며 “이왕 예산을 들여 도로를 정비한다면 시각장애인의 의견을 반영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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