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상준] “소-돼지고기 외면하면 축산농 두번 울리는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24일 03시 00분


구제역 재발에 업계 비상
성숙한 시민의식 요구돼

“우리 아이에게 우유를 먹여도 안전한가요?”

구제역이 발생했던 2000년과 2002년 동아일보를 포함한 언론사에는 이 같은 문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곤 했다. 정부가 “설령 구제역에 걸린 소나 돼지 고기를 먹어도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기 때문에 안심하고 소비해도 된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구제역 파동 이후 식사를 하면서 육류를 골라내는 사람이 많아졌고, 문을 닫는 돼지고기 전문식당이 속출했다. ‘혹시나’ 하는 불안 심리 때문에 육류 소비는 급감했고, 이는 그렇지 않아도 구제역으로 힘들었던 축산 농가를 두 번 울리는 피해를 줬다.

2010년 1월. 경기 포천시에서 8년 만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농림수산식품부가 구제역 확산과 함께 가장 우려한 것은 육류 소비 감소였다. 과거 두 차례의 구제역 발생 때처럼 소비가 급감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와는 반대로 시민들의 반응은 8년 전과 확연히 달랐다. 시민들은 차분했다. 육류 소비 역시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구제역에 관한 시민들의 인식이 한 단계 높아졌다”며 “구제역으로 인한 직접 피해는 어쩔 수 없지만, 육류 소비가 줄지 않아 축산농가에는 그나마 타격이 덜 갔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난 요즘, 정부와 축산업계는 똑같은 걱정을 다시 하고 있다. 올해 1월과 달리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소에 이어 돼지까지 감염되는 등 상황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22일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축산물을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고 재차 강조한 것도 행여나 육류 소비가 줄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대한양돈협회 관계자는 “멀쩡한 돼지를 도살 처분하는 것만으로도 축산농가에는 엄청난 타격”이라며 “여기에 육류 소비마저 줄어들면 축산농가의 어려움은 더 커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와 축산업계는 8년 사이에 성숙해진 시민들의 태도가 이번에도 유지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바라는 또 한 가지는 구제역 방역 협조다. 봄을 맞아 야외 활동 인구와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어 방역 당국에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구제역은 사람에 의해서도 전파될 수 있기 때문에 발생 지역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차량소독과 이동통제는 불가피한 조치”라며 “구제역 발생 지역으로의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당장은 관광객을 맞지 못해 지역 경제에 타격이 있겠지만, 해당 지역 방문을 자제해 구제역을 하루라도 빨리 잠재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지역 경제를 돕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시민들이 차분하게 대응하고 협조를 잘해줘 축산농가의 어려움을 덜어주면 좋겠다”는 축산업계의 절실한 호소에 다시 한 번 시민들이 답할 차례다.

한상준 산업부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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