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 주 에미츠버그 국립순직소방관기념관의 9·11 조각상. 사람 키의 3배만 한 소방관 동상이 그라운드 제로에서 성조기를 다시 올리고 있다. 이 조각상은 9·11테러 당시 잿더미 속에서 구조활동을 벌이다 순직한 343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美 소방관메모리얼, 소방관 75%가 자원봉사자… 순직자는 ‘명예의 步道’에 “불보다 뜨거운 헌신” 28년간 순직 소방관명단 기념탑 주변 동판에 빼곡 바닥 빨간벽돌마다 추모글…매년10월 수천명 모여 넋 기려
미국 워싱턴에서 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미국 메릴랜드 주 에미츠버그의 국립소방학교 캠퍼스. 이곳에 국립순직소방관기념관이 있다. 14일(현지 시간) 평화로운 캠퍼스 안 순직소방관기념탑의 성조기는 조기로 게양돼 있었다. 기념탑 앞 게시판에는 지난주 미국 전역에서 화재를 진압하다 순직한 소방관 4명의 이름과 함께 사인이 적혀 있다. 이곳에선 매주 순직한 소방관 이름을 사고 후 즉시 올리고 조기를 게양한다. ○ 소방관 75%는 무보수 자원봉사자
국립순직소방관재단 재정책임자인 찰스 재스터 씨는 “미국에서 근무 도중에 순직하는 소방관은 연평균 100여 명”이라며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소방관 120만 명 가운데 75%는 보수 없이 일하는 자원봉사자”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소방관 중에는 은퇴 후 소방관으로 봉사에 나선 이들도 있지만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역사회 봉사 차원에서 화재 등이 발생할 때 소방관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날 게시판에 올라 있는 순직소방관 4명은 모두 자원봉사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4월 9일 순직한 도널드 세이퍼 씨(53)는 몬태나 주 게인스빌 출신으로 개인 차량으로 화재 현장에 도착해 구호활동을 하던 중 다쳐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했다. 젊은 청년 개럿 루미스 씨(26)는 뉴욕 주 새키츠 하버 화재 현장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바람에 11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같은 날 사망한 캔자스 주의 해럴드 리드 소방대장(74)도 자원봉사를 하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미국은 소방서가 지역별로 운영되기 때문에 재정사정이 빠듯한 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없으면 제대로 된 소방활동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재스터 씨는 설명했다.
기념탑에 들어서자 화재를 진압하다 목숨을 잃은 소방관 이름이 연도별로 동판에 빼곡히 새겨져 있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연도별로 기념탑 주변에 배치돼 있었다. 입구엔 소방관의 희생정신을 상징하는 종(鐘)과 트럼펫이 전시돼 있다. 1981년 완공된 기념탑 전면에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남긴 글이 있었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수천 명의 소방관에게 바칩니다.”
2001년 9·11테러 때 사망한 소방관 343명의 명단도 새겨져 있다. 매년 10월 첫째 주말에는 성대한 추모식이 열린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모인 순직소방관 가족과 지역주민 등 7000여 명이 모여 순직한 소방관의 넋을 기렸다. 행사를 주관하는 재단에서는 정부 지원과 사회 각계각층의 기부를 받아 소방관 가족들에게 교통편과 숙박, 식사를 제공한다. 아내와 함께 딸을 데리고 이곳을 찾은 플로리다 주 클리어워터소방서의 스티브 콜버트 소방관(44)은 “남을 위한 삶을 사는 소방관을 존경하기 때문에 휴가 중 가족과 함께 기념관을 찾았다”고 말했다.
○ 순직 소방관 8500명 ‘명예의 보도’에
소방학교 캠퍼스 안에는 교회가 있다. 순직소방관 가족들이 매년 10월에 모여 추모식을 여는 장소다. 재단 생존자가족프로그램 책임자인 린다 헐리 씨는 “지난해 10월엔 촛불을 손에 들고 가족 6000여 명이 모여 아픔을 함께 나눴다”고 말했다. 교회 안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글이 빼곡하다. 교회에서 만난 아이다호 출신의 애슐리 르프랭스 씨(33)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최근 소방관이 됐다”며 “위험이 뒤따르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보람도 많은 직업이어서 진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함께 온 가족들은 그를 자랑스러워했다.
교회에서 기념탑으로 이어지는 200m와 다시 추모광장으로 이어지는 200m 길바닥은 모두 빨간 벽돌로 돼 있다. 벽돌 한 장 한 장마다 사망한 소방관의 넋을 기리는 글이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이른바 ‘명예의 보도(The Walk of Honor)’이다.
‘하느님은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텍사스의 스티븐스 가족.’ ‘사랑하는 크리스 월터를 그리며, 당신의 아내 대니.’
순직소방관을 추모하는 글을 새긴 벽돌 8500개가 교회와 기념탑, 기념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에 깔려 있다. 재단에서는 기관이나 개인에게 벽돌 한 장에 100달러씩 받고 팔아 후원금을 조달한다. 지금도 벽돌 1만3000장이 주인(기부자)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첫 가톨릭여자대학(세인트 조지프 칼리지) 자리였던 이곳에 기념탑이 세워지고 국립소방학교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16년 동안 몽고메리카운티 힐런데일자원봉사소방서 대장을 맡았던 고 마빈 기븐스 씨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 9·11 영웅 기리는 메모리얼 광장
추모탑 건너편에는 일반 성인 키의 3배만 한 소방관 동상이 있다. 2001년 9·11테러 후 사진작가 토머스 프랭클린이 그라운드제로에서 소방관 3명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를 기념동상으로 만든 것이다. 잿더미 속에서 구조활동을 하다 순직한 343명의 영웅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2007년 조각가 스탠 와츠 씨가 유타 주에서 만든 동상을 트럭 3개에 나눠 실어 이곳으로 운반했다.
1980년 1월 문을 연 국립소방학교는 1년에 47주 동안 수업을 하는 전천후 소방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소방관 과정은 학비를 받지 않는다. 국토안보부 소속으로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지역훈련 책임자인 게일 앨스턴 씨는 “소방관들이 있기에 우리가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소방학교 위기대응 콘퍼런스에 참석한 국방부 프로젝트 매니저 페이크 브라운 씨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소방관의 헌신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겠느냐” 고 말했다.
한 해 예산이 5000만 달러인 국립순직소방관재단은 2300만 달러를 연방정부에서 보조받고 나머지는 기관과 개인 및 재단의 후원을 받는다. 재단은 소방관 유가족의 상한 감정을 치유하고 유가족 자녀와 부인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순직경찰 1만8600명 기리는 美 법집행관기념관
365일 시민 발길 이어져
연중무휴 입장료 없이 개방
매년 5월엔 2만개 ‘추모 촛불’
워싱턴 도심의 사법광장에 있는 국립법집행관기념관에는 1792년 이후 순직한 법집행관 1만 8600명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순직자 명단이 새겨진 ‘추모의 길’ 입구에 수사자가 새끼 사자 두 마리를 굽어보고 있다. 수사자는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법집행관을 가리킨다. 워싱턴 시내를 관통하는 지하철역 ‘사법광장(Judiciary Square)’을 나서면 도심 속의 조그만 공원이 펼쳐진다. 파란 잔디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청회색의 대리석은 양쪽으로 100m씩 길게 늘어서 있다. 대리석 입구와 출구에는 어미 사자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새끼를 굽어보는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을 지키는 네 마리의 어미사자상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다 숨진 경찰관 모습을 담은 것이다. 1991년 10월 15일 세워진 국립법집행관기념관(National Law Enforcement Officers Memorial)에는 1792년 이후 근무 중 순직한 1만8600명의 경찰관 이름이 대리석에 빼곡히 새겨 있다. 연중무휴로 열리는 이 기념공원은 입장료가 없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임무를 다하다 숨진 조지 로스 딕월을 기리며 이 꽃을 바칩니다.’
19일(현지 시간) 찾은 이곳에는 코네티컷 주 베를린 시에 위치한 캐서린맥기중학교 학생들이 놓고 간 조그만 화분이 대리석 앞을 지키고 있었다.
순직법집행관 명단에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방정부에서 공무 중 순직한 경찰관이 모두 포함돼 있다. 국립경찰 행사가 열리는 매년 5월이 되면 지난 1년 동안 순직한 경찰관 이름이 이곳에 새로 올려진다. 조각상 입구에 마련된 순직 경찰관 명부에는 경찰관 이름과 명단 위치 및 계급, 소속, 생년월일을 확인할 수 있다.
사법광장 한복판에 있는 국립법집행관기념관 바로 앞에는 청원위원회가 자리 잡았고 인근에 워싱턴 경찰국이 있어 말 그대로 법집행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한다.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 두 마리를 내려다보며 지키고 있는 입구에 들어서면 ‘추모의 길’이 열린다. 법집행관 이름이 가득한 추모의 길에는 2001년 9·11테러 당시 사망한 경찰관 이름이 한데 모아져 있다. 1950년 10월 1일 백악관 영빈관에서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을 저격하려 한 푸에르토리코인을 저지하다 총에 맞아 숨진 비밀경찰국 소속 레슬리 코펠트 경관의 이름도 보인다. 이곳에는 200명의 여자 경관 이름도 올라 있다.
매년 5월 국립경찰주간 행사 때는 시민 2만여 명이 모여 촛불을 들고 순직 경찰관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갖는다. 이곳의 운영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국립법집행관기념관기금에선 올 10월 14일 박물관 착공 준비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10년 전 미 의회가 승인한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많은 준비 끝에 올 10월 첫 삽을 뜨게 됐다. 크레이그 플로이드 기금 이사장은 “법집행관은 미국 역사 초창기부터 국민을 위해 헌신해 왔다”며 “법집행관의 스토리를 박물관에 생생하게 담아 많은 사람에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관에서는 1만9000명의 순직 법집행관의 감동적인 얘기를 담기로 했다. 박물관은 2013년 문을 열 예정. 인근에 있는 방문자센터에서는 기념품을 고르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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