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명단 공개를 중단하지 않으면 하루에 3000만 원씩 전교조에 지급하도록 한 서울남부지법의 가처분 결정에 한나라당 의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대법원은 일절 대응을 피하고 있다. 공식 입장을 내놓게 되면 사법부와 집권 여당이 정면충돌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는 조 의원과 한나라당의 최근 움직임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판사는 “조 의원과 한나라당의 속내는 법원을 의도적으로 공격해 전교조 대 반(反)전교조 구도를 조성함으로써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6·2 교육감선거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울남부지법이 조 의원에게 하루 3000만 원씩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한 것은 지나친 것 아니냐는 반발에 대해서도 판사들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법원의 명단 공개 금지 결정에도 불구하고 조 의원이 공개를 강행했는데, 이를 중단시키려면 실질적 압박이 될 정도의 강제이행금을 부과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전교조가 하루에 8500만 원의 강제이행금을 청구했으나, 그의 3분의 1 정도인 3000만 원을 부과한 것은 과도하지도 않다는 것. 법원이 전교조 명단 공개를 중단하도록 결정한 것은 교원의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한 ‘교육 관련 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따른 것인데도, 입법권을 갖고 있는 국회가 법원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변호사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놓고 시각이 엇갈렸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법원의 결정은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법원의 결정이 기대와 다르다고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은 조 의원의 행동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한 대형 로펌의 중진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국가기관인 국회의원의 공권력 행사로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이므로 애초부터 헌법재판소에서 다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소속 변호사 9명은 조 의원 관련 소송 사건의 무료 변론에 나서는 등 조 의원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동참 나선 與 의원들 “사생활 침해로 볼수 없어” ‘정보공개 특례법’도 발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조전혁 의원의 전교조 조합원 명단 공개에 잇따라 동참함에 따라 조 의원과 전교조 사이의 대립은 여당과 법원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모양새다.
김효재 의원이 지난달 29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에 교원단체 명단을 공개한 데 이어 30일엔 정진석 정두언 진수희 김용태 정태근 의원 등도 추가로 명단을 공개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이 같은 집단행동은 그동안 누적된 ‘이념적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의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많다. 정두언 의원은 “조전혁 의원에 대한 ‘조폭 판결’에 공동대처하는 것은 어설픈 수구좌파 판사의 무모한 도발에 결연히 대응하는 행위”라며 “내가 전교조라면 떳떳하게 공개할 것이다. 뭐가 창피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진석 의원은 “법원의 결정이 너무 가혹하고 편향됐다”며 “사법부가 옳지 않은 방향의 판단을 했다면 국회의원은 집단행동으로 잘못을 지적하는 정치적 행동을 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한 핵심당직자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의 국회 폭력 무죄판결 등 최근 법원의 편향된 판결에 대해 팽배해 있던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내 율사 출신 의원들은 “법리적으로 해석해도 서울남부지법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호사 출신인 이두아 의원은 “남부지법과 달리 교원단체 가입 여부가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서울중앙지법의 논리가 합리적”이라며 “집단 명단 공개는 법원 결정에 대한 불복이 아니라 서울중앙지법의 판단에 따른 조치”고 말했다.
박보환 의원은 최근 교원단체 및 노조의 명단 공개를 의무화하는 ‘교육기관 정보공개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교원노조 명단 공개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맞서고 있어 한나라당과 법원의 갈등 전선이 입법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이 대거 명단 공개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내 일각에서 국회의원이 법원에 맞서 불법적 행동을 하는 데 대한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홍일표 의원은 “국회의원의 직무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도 한발 물러서 있다. 한 핵심당직자는 “조 의원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집권여당이 법원과 정면 대결하는 모습을 국민들이 바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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