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그후, 무엇을 할것인가]<2>중병 앓는 軍-보고체계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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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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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둥대고 머뭇대고… ‘5분 보고 매뉴얼’ 실전에선 무용지물

《합동참모본부는 매일 ‘핸디캡 화이트, 핸디캡 블랙’으로 불리는 상황보고 및 지휘통제 전파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핸디캡 화이트는 합참에서 내린 명령이 일선 부대까지 얼마나 빠르게 내려가는지, 핸디캡 블랙은 일선 부대의 상황보고가 합참까지 얼마나 신속하게 올라오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한국군의 상황보고체계는 ‘2단계 상급제대’까지, 즉 상급과 차상급에 동시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혹시 상급부대가 판단 착오나 실수로 상부 보고를 빠뜨릴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상황보고는 통상 일선 부대에서 합참까지 5분 만에 이뤄진다. 상황보고 매뉴얼도 잘 갖춰져 있다. ‘최초보고는 신속하게, 중간보고는 정확하게, 최종보고는 완결성을 갖춰 대안 제시까지 해야 한다’는 매뉴얼은 대부분의 군 교범에 나와 있는 얘기다. 장병들은 이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며 매일 훈련하고 있다.》

번지수 못 찾은 보고
합참 제치고 해군끼리 전파…“지휘계통 문란죄 될 수도”

관료 문화의 폐해

“섣불리 보고했다 깨지면…” 상관 두려워 신속원칙 무시

3軍 벽 높아 ‘판단미스’
컴퓨터 지휘시스템 연동안돼…“함정 1척을 탱크 1대 취급도”

○ 작동하지 않은 보고 시스템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 밤 이 보고체계는 작동하지 않았다. 매일 매뉴얼에 따라 반복했던 훈련도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천안함의 침몰 사실이 해군을 통해 합참 지휘통제실(지통실)에 접수되기까지 23분이 걸렸다. 지통실에서 이상의 합참의장에게 보고하기까지는 다시 26분이 걸렸다. 평소 훈련대로라면 5분이면 될 상황보고가 천안함이 침몰하던 날에는 49분이 걸린 것이다.

이뿐이 아니었다. 실종자 구조작업 과정에서 합참과 해군 사이에 작업 진행에 대한 보고가 원활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함미에 처음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작업에 대해 합참은 사실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같은 시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는 공기 주입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4월 12일 함미를 수심이 얕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작전에 대해서도 이를 지휘해야 할 합참의장은 이동 직전에야 ‘통보’받은 반면 해군참모총장은 이미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 보고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문제

이런 보고체계의 혼선은 군의 신뢰에 근본적인 의문을 낳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문제는 보고체계라는 시스템이 아닌 이를 운용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게 예비역 장성들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예비역들은 입을 모아 “보고시스템은 어느 나라보다 잘 갖춰져 있다”고 말했다. 합참 전비태세검열단도 천안함 사건의 상황보고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지통실에 근무했던 반장의 판단 착오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육군 출신 예비역 장성은 해군이 합참에는 보고하지 않은 채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한 것과 관련해 “만일 해군작전사령관이 합참의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를 했다면 지휘계통 문란죄로 중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공군 출신 예비역 장성은 지통실 반장의 실책에 대해 “매뉴얼이 잘돼 있는데 그런 실수는 이해할 수 없다. 군 기강의 해이”라고 말했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은 “군인 보고체계를 망각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 보고하기를 무서워하는 군인?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19일 자신에게 천안함 침몰 상황보고가 늦게 온 것에 대해 “부하들과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휘통제실 반장인 대령이 저한테 전화하기를 꺼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 현역 장교는 “매뉴얼에는 최초보고는 육하원칙도 필요 없이 신속하게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상황이 벌어지면 그대로 따르기 쉽지 않다”며 “신속성만 강조해 보고부터 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거나 상관이 상세히 묻는데도 답을 못했을 때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보고는 틀리고 안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최초보고는 신속성이 가장 중요하다”며 “보고가 잘못된 사실로 드러나 합참의장이 헛걸음을 했어도 ‘큰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파악도 안 됐는데 왜 전화했어’라고 질책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해군 출신 예비역 장성은 “(장관 보고를 어려워하는 것은) 군의 관료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현역 장교는 “보고를 잘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신속한 보고를 위해서는 군 수뇌부의 인식 변화가 우선 돼야 한다”고 말했다.

○ 3군 간의 이해 부족

육해공군은 상대방의 무기체계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작전 개념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상군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정에서는 어떤 작전을 펴는지, 전투기 출격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서로 잘 모른다. 상호 이해를 높이기 위해 각 군에서는 합동교육을 실시하지만 그때뿐이라고 한다. 합참의 한 장교는 “타군에 대한 체험을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육해공군은 감시 및 타격체계를 컴퓨터로 연결해 주요 전장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는 C4I(지휘통제)체계를 각각 갖췄다. 하지만 서로 연동이 안 된다.

해군 출신 예비역 장성은 “합참의 작전계통 보고 라인이 육군 중심으로 짜여 있다 보니 배 1척을 탱크 1대나 비행기 1대 정도로 생각해 해군과 관련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안의 중대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육군 출신 예비역 장성은 “작전계통 보고라인의 책임자는 육군이지만 휘하에 해·공군 장교들이 포진해 있어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故 ‘천안함 46용사’…국민 품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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