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펀드 투자 가장 주가조작… ‘검은머리 외국인’ 10억 챙겨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3일 03시 00분


코스닥기업 7곳과 공모
외국계펀드 운영 50대 구속

지난해 10월 코스닥 시장에서 ‘투자의 귀재’로 불리던 A사 대표 박모 씨(43)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비상장업체 M사를 인수합병(M&A)하고 싶지만 소액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막을 방법이 없었던 것. 일반적으로 회사가 M&A에 나서면 소액주주들은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보고 경영진에게 자신의 주식을 사달라고 요구한다. 이들의 주식을 모두 사들이는 데 필요한 돈은 102억 원가량. 그러나 그는 묘안을 생각해냈다. 바로 외국계 펀드가 매수에 들어오는 방법이었다.

▶본보 4월 26일자 A12면 참조
코스닥 ‘M&A 귀재’ 1000억대 횡령


곧바로 홍콩계 펀드 P사와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사모펀드 M사를 운영하던 투자전문가 문모 씨(52)가 ‘해결사’로 나섰다. 문 씨는 금융당국의 감시를 피해 2개월간 A사 주식 3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외국계 펀드가 매입에 나서자 주가는 4000원대를 넘나들었다. 대부분의 소액주주들은 주식을 계속 보유했고, 박 씨는 주식 매입에 12억 원만 쓰고 M&A를 마무리했다. 현재 A사는 관리대상종목으로 지정됐고 주가는 185원이다. 무리한 M&A와 주가 폭락의 피해를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이 떠안은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부장 유상범)는 2008∼2009년 외국계 펀드인 P사와 M사를 이용해 코스닥 기업 7곳의 주가조작에 421억 원을 투입하고 회사 대표들로부터 이자 10억여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문 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일 밝혔다. 또 한국기술투자(KTIC)홀딩스 대표 서모 씨(36) 등 코스닥 상장사 대표 3명을 문 씨와 주가조작을 공모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문 씨는 2008년 7월∼2009년 8월 KTIC홀딩스 등의 주식 305억 원어치를 사들여 주가를 높이고, 2008년 9월 정보기술(IT) 부품업체 V사의 주식 매수와 유상증자에 57억 원을 투입해 이자를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문 씨가 외국계 펀드라는 이점을 이용해 원리금과 이자를 보장받는 이면계약을 맺은 뒤 주식시장을 교란해 소액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히는 속칭 ‘검은머리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있다. ‘검은머리 외국인’이란 세금을 내지 않는 해외 지역에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차린 뒤 외국자본을 가장해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한국인 투자자를 일컫는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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