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앞길 창창했던 30대 공중보건의, 리베이트 늪에 빠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3일 03시 00분


그들이 속삭였다
약을 써주면 돈을 줄게
아버지의 부도… 늘어나는 빚
가짜처방전까지 썼다
50만원 500만원 챙긴게 1억
흰 가운 입고 환자진료 대신
수의 입고 차디찬 교도소에

“허위진단서? 행정계장, 왜 이게 당신 노트에 적혀 있죠?”

강원도 철원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의 P 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군청 행정계장에게서 압수한 노트 앞쪽에 의외의 메모 하나가 붙어 있었다. P 형사는 철원군수 딸의 7급 공무원 특채 의혹을 수사하고 있었다.

“그게…보건소에서 한 공중보건의(공보의)가 허위 처방을 내린 것 같다는 보고를 해 와서…. 아직 자세한 경위는 잘 알지 못해서….”

행정계장도 잘 모르는지 말끝을 흐렸다.

P 형사는 감을 잡았다. 특채 비리와는 별도로 문제의 메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의 일이다. 그렇게 3개월간 수사를 펼친 결과는 예상 밖으로 놀라웠다. 공보의가 약값 리베이트로 챙긴 돈이 무려 1억2300만 원이나 됐다. 올 2월 그 공보의를 경찰로 불렀다. 그는 3개월간 수집한 증거를 들이밀자 “잘못인 줄 알았지만 들킬 리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4월 19일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3년의 의무 복무기간을 마치고 전역하기 사흘 전이었다. 리베이트로 구속된 첫 공보의라는 기록과 함께….

친구처럼 접근해온 제약사 직원들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김수진 기자
공보의 이모 씨(33)가 처음 받은 돈은 현금 50만 원이었다. 그가 보건소 공보의로 부임하고 얼마 안 돼 찾아온 제약사 직원이 ‘앞으로 저희 약 좀 많이 써 달라’ ‘잘 부탁한다’며 내민 봉투에 들어 있었다. 받아야 할까 망설였지만 막무가내로 놓고 가는 그에게 돈을 되돌려주기도 민망했다. 현금 50만 원이 무슨 거창한 리베이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성의 표시였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씨를 찾아온 제약사 직원은 한 명이 아니었다. 공보의가 새로 바뀌었다는 소식에 제약사 8곳에서 직원들이 찾아왔다. ‘주말에 술이라도 한잔하자’ ‘고향도 멀어서 어차피 혼자서 적적하지 않으냐. 당구나 한 게임 치자’라며 접근했다. 대부분 비슷한 또래의 제약사 직원들이었다. 이 씨가 술을 먹고 용돈을 얻어 쓰는 정도로만 어울렸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큰 빚이 있었다는 것이 리베이트의 유혹에 더욱 깊숙이 빠지게 했다.

그가 의대에 들어간 뒤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냈다. 아버지는 이 씨의 명의를 빌려 다시 사업을 시작했지만 또 실패했다. 이 씨가 아버지 대신 갚아야 할 빚은 자꾸만 늘어갔다. 어머니에게 틈틈이 생활비도 보내야 했다.

제약사 직원들은 줄기차게 이 씨를 찾아왔다. ‘약 처방으로 얻는 수익 중 10∼20%를 계좌에 입금해주겠다’는 제안이 잇따랐다. 특정 제약사의 약을 많이 처방한 것도 아닌데 한 제약사 직원은 고맙다며 술값으로 매달 30만 원을 통장에 넣어줬다. 처음에는 꺼림칙했지만 여기저기 알아보니 그 정도는 다 받아둔다고 했다. 한두 번 받다 보니 양심에 찔리는 것도 점점 사라지고 배포도 커졌다.

환자 수는 적고… ‘한탕’을 노렸다

하루에 보건소를 찾는 환자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평균 100∼200명. 철원은 농어촌 지역이라 만성질환을 앓는 고령인구도 많았다. 만성질환자들은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이 씨는 제약사들이 요청한 고혈압이나 당뇨 약을 처방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당 6개월 치씩 처방했다. 1000만 원어치 처방을 내리면 이 씨의 통장으로 150만∼200만 원이 들어왔다. 집중적으로 처방을 내리면 500만 원도 받을 수 있었다. 이 씨 명의의 계좌 두 곳으로 제약사 8곳에서 보내는 돈이 착착 쌓였다. 실명 계좌에 불안을 느낀 이 씨는 보건소에 부임한 지 1년 만에 차명계좌를 만들었다.

그러나 하루에 보건소에 오는 환자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씨는 국가에서 약값을 대신 내주는 의료급여수급권자들을 떠올렸다. 보건소를 한 번이라도 찾았던 노인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허위 처방전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김 할아버지에겐 고혈압 약 3개월분, 이 할머니에겐 당뇨 약 5개월분….

의료수급권자 32명의 이름을 돌려가면서 썼다. 약국에 가서 처방전만 내밀면 됐다. 의료수급권자들이 직접 가지 않아도 약국에서는 약을 줬기 때문이다. 약국에서 받은 약봉지들은 그의 차 트렁크에 쌓였다. 너무 많으면 모아서 다시 제약사 직원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시골 동네여서 소문이 날까 걱정됐다. 동네에 있는 약국 4곳을 순서대로 돌아다녔다. 나중에 확인된 것만 70여 차례였다.

그래도 돈을 타낼 수 있는 환자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씨는 마음이 조급했다. 이번에는 기간을 늘려 보기로 했다. 한 번에 150만 원어치의 약을 처방했다. 그는 이렇게 리베이트 액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돈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제약사는 돈을 벌었고 이 씨도 돈을 벌었다.

그러나 이 씨는 간단한 ‘상식’을 알지 못했다. 특정 약을 180일 이상 처방했을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게 돼 있다. 그걸 몰랐다.

심평원에서 전화를 받은 한 노인이 보건소로 전화를 했다.

“저는 요즘 보건소에 간 일도 없는데, 고혈압 약을 잔뜩 타갔다고 해서요.”

보건소 직원들은 이 씨에게 맞는지 물어봤다. 이 씨는 그런 일이 몇 건 있었다고, 죄송하다며 생각나는 대로 몇 건을 털어놨다. 가벼운 징계로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보건소도 군청 행정계장에게 간단히 보고했을 뿐이다. 그 별것 아닌 한 줄짜리 보고가 이 씨의 의사 인생을 한순간에 망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보건소 인근 소머리국밥집에서 일하는 할머니 종업원은 이 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도 이 씨의 환자였다. 할머니에게 이 씨는 ‘증상과 치료방식을 천천히 설명해주는 좋은 의사’였다.

이 씨의 범행에 가장 놀란 건 보건소 직원들이었다. 이 씨는 보건소에서 만나면 늘 싹싹하게 인사하던 청년이었다. 지난해 신종 인플루엔자로 보건소가 미어 터졌을 때도 불평 한 번 안 했다. 추석 휴가 때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고, 주말도 반납해 가면서 환자들을 진료했다. 출근 시간이 늦었던 적도, 환자들로부터 민원이 들어온 적도 한 번 없었다.

수십만원은 예사… 쏟아지는 유혹
사실 이런 유혹에 넘어가는 공보의가 이 씨 혼자만은 아니다. 이 씨 사건 직전만 해도 대전과 충남북 지역 보건소 소속 전현직 공보의 34명이 뇌물수수 혐의로, 이들에게 뇌물을 준 제약사 상무와 영업사원 24명이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한 보건소 공보의는 3년 동안 특정 제약사 제품의 혈압 약과 신장 약을 처방하는 대가로 현금과 상품권 등 7000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다른 의사들도 한 차례에 적게는 20만 원, 많게는 몇백만 원씩 받았다.

현재 전국에 근무하는 공보의는 5282명. 의대 출신이 3394명, 치과의사가 851명, 한의사가 1037명이다. 의사 3394명 중 의대 6년을 막 졸업한 일반의가 1416명, 인턴과정을 마친 사람이 113명,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친 전문의가 1865명이다. 이 씨는 인턴을 마치고 공보의로 갔다.

매년 1500여 명의 신규 공보의가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친 뒤 3월에 배치를 받는다. 운이 좋아 집에서 가까운 곳에 배치 받을 수도 있지만 연고가 전혀 없는 섬 지역으로 발령받는 사람도 태반이다.

먼 곳으로 발령받은 공보의들은 처음 몇 번 가족들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 그러나 애인이 없는 사람이라면 굳이 집으로 갈 이유가 없다. 공보의끼리 어울리거나 지역 내에서 할 만한 취미생활을 찾는다. 틈을 내 공부를 하거나 전문의 시험 준비를 하는 사례도 있다.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빈틈을 제약사 직원들은 놓치지 않는다. 지역별로 자기 영업권역을 가진 제약사 직원들에게 4, 5월은 가장 바쁜 시기다. 새로 배치 받은 공보의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기 위해서다. 맛집을 소개해 준다는 명목으로 의사들을 주말에 불러낸다. 처음에는 친구처럼 다가설 뿐 현금을 덥석 주지 않는다. 이들은 공보의의 성격을 재빠르게 파악한다. 상품권을 원하는지, 제약사 명의의 카드를 빌려줘서 대신 그 카드로 물건을 사기를 원하는지, 현금을 원하는지를 알아낸다.

공보의로 군복무를 하는 의사들의 평균 나이는 현역으로 군대를 가는 일반 남성보다 많다. 의대 6년을 졸업하고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생활을 마쳐야 전문의 자격이 주어진다. 의대를 가겠다고 재수나 삼수를 했을 경우 나이는 더 올라간다. 30세가 넘은 공보의라면 처자식이 딸린 사람도 많다. 가족이 전부 같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주말부부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씨가 근무한 철원보건소의 공보의 월급은 180만 원이지만 공보의의 평균 월급은 150만 원 정도. 가정을 꾸리기엔 부족하다. 비싼 등록금을 대출로 해결한 의사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제약사의 달콤한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다. 1년 전 공보의를 마친 한 의사는 “처음에 보통 20만 원짜리 주유상품권, 10만 원짜리 통신사 상품권, 공짜 휴대전화로 출발하기 때문에 리베이트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공보의는 거의 없다”며 “그러나 나중에 본격적 거래가 시작되면 액수가 급속히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차를 그랜저로 바꿔주겠다는 제안까지 받았다고 했다.

수수… 사기… 혐의만 4가지
이 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4가지다. 공보의는 3년 동안 보건복지부에 소속되기 때문에 의사이면서 공무원이다. 공무원이 민원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뇌물수수죄가 성립한다. 3000만 원, 5000만 원, 1억 원…. 단위가 커질 때마다 가중해서 벌을 받는다. 이 씨가 받은 액수는 1억2300만 원. 정상 참작으로 형량 감경을 하지 않는다면 10년 이상 징역을 받아야 한다.

이 씨가 발행한 허위 처방전도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허위공문서 작성이 된다. 차명계좌를 만들어 돈을 관리한 것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다. 마지막으로 국가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챙겼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사기죄도 성립한다. 이 씨와 제약사가 챙긴 몫은 공짜로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다. 국민들이 모은 건강보험 재정은 금 간 독처럼 그렇게 물이 새고 있었다.

공중보건의의 리베이트 문제가 고구마 줄기 캐듯이 나오자 복지부는 뒤늦게 신규 공보의들을 대상으로 ‘정신교육’을 시켰다. 지난달 19일과 20일 이틀간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선 신규 공보의 1500명을 대상으로 리베이트 근절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정부 부처가 이틀 연속 강도 높은 리베이트 교육을 시킨 것은 처음이다. 복지부는 공보의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에도 ‘관리 교육을 철저히 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달 29일 기자는 교도소에 수감된 이 씨에게 면회를 신청했다. 교도소까지 찾아갔으나 면회 당일 만나기를 거절했다. 아무래도 낯선 이름의 방문객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당분간 세상과는 단절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흰 가운을 입고 환자들을 상대하는 레지던트로 일하거나 병원에 취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수의를 입고 겨울같이 찬 바람이 부는 교도소에서 돌아누워 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narrative report::
내러티브 리포트(Narrative Report)는 삶과 현실을 담는 새로운 보도 방식입니다. 기존의 기사 형식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세상 속 세상’을 이야기체(Storytelling)로 풀어냅니다. 동아일보는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더욱 깊이 있는 세상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