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알파걸 등돌려 한숨짓는 아현 웨딩타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3일 03시 00분


직장여성들 발품팔 시간없어
청담동 컨설팅업체에 맡겨
손님 ‘뚝’… 환란 때보다 더해
저렴한 가격으로 부활 승부수
예식장-예물등 원스톱서비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고집스럽게 수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온 가나웨딩 임명숙 원장(왼쪽)이 지난달 21일 옷감을 마름질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고집스럽게 수제 웨딩드레스를 만들어온 가나웨딩 임명숙 원장(왼쪽)이 지난달 21일 옷감을 마름질하고 있다. 사진 제공 마포구

신영은 씨(28)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타운에서 나고 자랐다. 20여 년 전 초등학생이던 신 씨는 학교를 마친 뒤 곧장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할 때가 많았다. 작은 양손에는 전국 각지 웨딩홀로 배달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가 잔뜩 들려 있었다. 어머니는 웨딩드레스를 손수 만들었다. 반짝이는 구슬장식과 정성들여 놓은 자수로 꾸민 어머니의 웨딩드레스는 인근 이화여대 학생들의 발길을 잡곤 했다. 1년 매출이 1억 원에 이를 때가 있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9년 집을 장만했다. 10년이 지난 2010년 5월 또다시 웨딩시즌이 돌아왔다. 하지만 지난달 21일 미리 가본 마포웨딩타운에선 흰 웨딩드레스보다는 무지개 색상의 연주복들이 진열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외환위기도 잘 버텨냈는데…


마포웨딩타운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국내 대표적인 웨딩드레스 전문거리로 알려졌다. 이화여대와 연세대 등 주변 대학가를 적극 활용해 그 당시 결혼식 때 많이 입던 한복 대신 웨딩드레스를 알려나갔다. 1988 서울 올림픽 이후 서양식 웨딩이 대중화되면서 웨딩타운에는 60여 개 업체가 양쪽 거리를 점령할 때도 있었다. 외환위기 시절에도 웨딩타운은 어려운 줄을 몰랐다. 주말이면 10여 쌍의 예비 신혼부부가 거리를 가득 채웠다.

웨딩타운의 시련은 직장을 가진 ‘알파걸’들이 늘어나면서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예비 신부가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와 함께 직접 발품을 팔며 혼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회사일로 바빠진 여성들은 10∼20%의 수수료를 주고 웨딩컨설팅 전문업체에 맡기기 시작했다. 이들 업체는 주로 강남구 청담동에 모여 있다.

마포에서 28년째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온 ‘잉꼬웨딩’ 김계순 대표(56·여)는 “요즘은 웨딩드레스를 보러 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며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2년 전부터 연주복도 같이 만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웨딩타운에 남아있는 32개 업체 중 15군데가 연주복도 함께 다루고 있다.

○ “그래도 우리는 ‘웨딩타운’의 자존심”

예전의 화려한 시절을 기억하는 이곳 상인들은 그래도 웨딩드레스는 포기 못한다고 했다. 반평생 직접 손수 드레스를 만들어 온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인 듯했다. 어머니 가게인 ‘가나웨딩’에서 함께 일하는 신 씨는 “청담동에도 장점이 있듯이 아현동에도 그 못지않은 특유의 장점과 역사, 노하우가 있다”며 “특히 3분의 1가량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을 앞두고 23일 신 씨 가게를 찾은 예비 신부 이용희 씨(27)는 “아현동으로 오기 전 청담동에도 갔는데 웨딩 패키지 가격이 300만 원대였다”며 “아현동은 드레스 디자인이나 질 면에서도 만족스러운데 가격이 100만 원가량 저렴했다”고 말했다. 웨딩플래너가 없는 대신 가게 주인들이 예식장을 예약해주고 저렴한 가격의 한복이나 이불 가게를 소개해주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모두 무료다. 그동안 웨딩산업에 종사하면서 얻은 넓은 인맥과 네트워크를 활용하기 때문. 윤명숙 ‘올드레스’ 대표는 “종로 예물집부터 아현동 가구거리까지 모두 서로 연이 닿는다”며 “결혼 날짜와 배우자감만 데려오면 모두 해결해줄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상인들은 마포웨딩타운이 옛 명성을 되찾으려면 무엇보다 요즘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춰 바뀔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입을 모았다. 신 씨는 “차를 세울 곳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는 손님들의 문의 전화가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윤 씨는 “업체가 각자 홍보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마포구는 “지난해 ‘웨딩타운 이대거리 축제’ 및 ‘무료합동 결혼식’ 등 다양한 홍보 행사를 지원해 축제 분위기를 조성했다”며 “올해는 업체들이 대형 웨딩 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 실질적인 매출 신장에 기여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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