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신현초등학교 6학년 박정우 양(12·인천 서구)은 8일 어버이날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선물로 준비 중이다. 얼마 전 학교 계발활동으로 ‘UCC(손수제작물) 만들기’ 부에 들어간 박 양은 지도 선생님이 “부모님께 보여드릴 감동의 동영상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는 순간 ‘어버이날 선물로 이거다!’란 생각이 스쳤던 것.
박 양은 어버이날용 UCC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친구 세 명에게 “학교 끝나고 교실에 남아달라”고 요청했다. 한 친구에겐 ‘아빠’의 대역을, 다른 친구에겐 ‘엄마’의 대역을 맡겼다. 이 ‘아빠’와 ‘엄마’가 어린이날을 맞아 박 양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을 연출했고, 나머지 한 친구가 박 양의 디지털카메라로 이 모습을 찍었다. 그리고 이 사진 위에 박 양은 다음과 같은 자막을 넣었다.
‘지금까지 엄마 아빠로부터 제가 선물만 받고 해드리진 못해 죄송해요.’ 이 자막이 끝나면, 박 양이 엄마 아빠 대역인 친구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안마하는 사진이 등장한다. 이 사진과 함께 ‘어머니 은혜’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깔았다. 그 다음 장면으론 박 양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동영상이 나온다. 여기서 박 양은 화면을 보고 있을 부모님께 이렇게 말한다.
“엄마, 아빠. 늦게까지 일 하시느라 많이 힘드시죠? 제가 사춘기라서 속 많이 썩여 죄송해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박 양은 매일 1시간씩 2주에 걸쳐 이 UCC를 완성해가고 있다.
“작년에는 오빠와 함께 어버이날 선물로 케이크를 준비했어요. 엄마 아빠가 퇴근하실 무렵 집의 전등을 모두 꺼놓고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고 기다렸죠. 그런데 현관을 막 들어온 부모님이 집 안이 어두컴컴한 것을 보시고 케이크가 준비돼 있다는 걸 눈치 채셨어요. 깜짝 이벤트 효과가 떨어졌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올해는 UCC 동영상으로 정말 깜짝 놀라게 해드릴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어버이날은 똑같은 5월 8일이지만, 부모님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자녀의 방식은 고금(古今)이 다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초등학생들은 ‘저비용 고효율’의 선물을 준비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만든 색종이 카네이션 또는 편지를 선물하거나 문방구에서 산 앙증맞은 볼펜이나 머리핀을 선물로 주는 경우도 있다.
서울 우암초등학교 4학년 유희수 양(10·서울 서초구)은 재치가 넘치는 자신만의 ‘쿠폰’을 선물로 준비했다. 부모님이 저녁에 녹초가 되어 귀가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유 양은 ‘예쁜 딸 희수가 해주는 30분 안마쿠폰’ ‘무료 심부름 쿠폰’ ‘강아지 목욕시키기 쿠폰’을 직접 만들어 부모님께 드릴 생각이다. 쿠폰 뒷면에 ‘아빠 엄마, 사랑해요’란 문구를 적어 넣는 것은 기본 센스.
한편 중학생들은 부모가 구체적인 감동을 느낄 선물을 준비한다. 중2 최주영 양(13·경기 수원)은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를 개다가 낡고 닳은 엄마의 속옷을 목격했다.
“언니랑 저는 좋은 것만 입히시는데 엄만 ‘괜찮다’고 하시며 옷도 잘 사입지 않으세요. 엄마 말 안 듣고, 학교 갔다 오면 친구랑 전화 통화만 하고, 짜증부린 게 떠올라 죄송했어요.”
최 양은 집 근처 속옷가게로 가 어머니에게 선물할 속옷 가격을 알아봤다. 2만5000원. 속옷을 사기 위해 최 양은 한달 용돈인 1만 원을 거의 쓰지 않고 3월부터 모았다. 평소 학교 끝나고 하나씩 사먹는 감자 칩도 애써 외면했다. 대신 집에 와서 어머니가 해준 찐고구마와 간식을 먹었다.
“어버이날 아침에 어머니가 일어나면 보실 수 있도록 속옷을 편지와 함께 식탁 위에 놓을 생각이에요. ‘우리 딸이 최고’라고 하시겠죠?”(웃음)
용돈이 달리는 학생들은 ‘머리’와 ‘몸’을 쓰는 선물을 준비한다. 대표적인 선물은 바로 ‘성적표’. 지금 중간고사 기간인 중2 김선재 군(14·서울 서대문구)은 어버이날 선물로 전교 30등 안에 든 성적표를 드리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시험공부에 돌입했다.
“과학(시험)은 아주 잘 봤어요. 서술형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90점은 넘는 것 같아요. 1학년 때보다 오른 성적표를 보여드리면 부모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중3 장치훈 군(15·경기 용인시)은 ‘감성(感性)’을 선물한다. 지난해 어버이날엔 미국 팝가수 조쉬 그로반의 대표곡 ‘유 레이즈드 미 업(You Raised Me Up)·당신은 내게 힘이 되어주었어요’을 불러드렸다. 소파에 앉은 부모님 앞에서 장 군은 무반주로 열창을 했다. 올해 장 군은 3월부터 매주말에 피아노 연습을 했다.
“올해는 콘서트를 준비해 보려고요. 케이크도 사다 놓고, 제가 직접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러드리면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요.”
장 군이 반주와 노래를 준비 중인 노래는 미국 가수 에릭 베넷의 ‘Still With You(당신과 함께 있음을)’이다.
재치 넘치는 선물도 있다. 색다른 이벤트를 선물하고자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것. 중3 김민선 양(15·서울 강남구)은 지난 주말 가족과 야구장에 가는 차 안에서 개그 듀오 ‘컬투’가 진행하는 ‘컬투쇼’라는 라디오프로그램을 들었다. 그런데 청취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재밌다”면서 웃으시는 게 아닌가.
“지난해 어버이날엔 꽃다발과 케이크를 해드렸는데, 올해는 뭔가 특별한 경험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컬투쇼에 사연을 보내 어머니와 함께하는 방청 신청을 했어요.”
경쟁을 뚫기 위해 김 양은 중간고사 시험기간 중 하루를 택해 그날 방청하겠다고 신청했다. 시험기간 중에는 학생들의 신청이 적어 당첨 확률이 높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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