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죄 찬성한 제약사 약 안쓰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5일 03시 00분


일부 의사 ‘의료 5적’ 규정 영업사원 방문 막아
복제약 의존 중소제약사 영업방식 심각한 타격

리베이트를 주면 제약사뿐만 아니라 받은 의사도 함께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죄 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후폭풍이 불고 있다. 올해 10월부터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 동시에 시행될 예정이어서 제약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는 병의원이 지금보다 싼값에 약을 구매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경남 김해시의사회는 최근 지역 내 300여 개 제약사 영업사무소에 시의사회 소속 병의원을 방문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리베이트 쌍벌죄 시행 시기는 10월이지만 시범 사례로 찍힐 것을 우려해 제약사 영업직원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실제로 요즘 제약사 영업 담당자들은 “의사를 만나기가 어려워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호소한다. 몇몇 의사는 일부 제약사를 ‘적(敵)’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한 제약사 영업 담당자는 “경기 지역 의원을 찾아가니 원장이 ‘○○사가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려면 쌍벌죄도 도입하라’고 주동했다면서? 앞으로 그쪽 약은 쓰지 않을 테니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일부 의사로부터 ‘의료 5적’으로 거론되는 회사는 안국약품, 한미약품, 대웅제약, 동아제약, 유한양행이다.

한편 대형병원에서는 이를 계기로 조직 문화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쌍벌죄의 리베이트에는 금전뿐만 아니라 노무, 향응까지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제약사가 지원하는 학회 참석을 금지하는 한편 진료과뿐 아니라 검사실, 행정부서의 리베이트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홍영선 원장은 “제약사 영업사원 방문 실명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약업계는 두 제도가 2000년 실시된 의약분업과 비슷한 파급력을 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리베이트라는 제약업계의 생존 방식에 정부가 정면으로 칼을 빼든 셈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리베이트가 횡행했던 이유는 복제약이 주종을 이루는 국내 제약업계의 한계 때문. 올해 1월 기준 보험에 등재된 약품은 총 1만4883개 품목. 그중 특허약 420개 품목을 제외한 1만4463개 품목이 모두 복제약이다. 국내 제약사의 특허약은 20개 품목 안팎에 불과하다. 국내 제약업체들이 그동안 막대한 투자가 따르는 신약 개발보다 복제약을 통한 ‘편한 길’을 택한 결과다. 이처럼 제품의 차별화가 없다 보니 ‘영업력=제품 경쟁력’이 됐고, 자사 약을 처방해 준 의사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리베이트가 관행으로 굳어졌다.

그러나 저가구매 인센티브제와 쌍벌죄를 실시하면 더는 기존 영업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제약만 팔아오던 중소 제약사들의 경우 특정 분야에 경쟁력 있는 제품으로 틈새시장을 찾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선진국 수준으로 의약품 제조품질을 관리하기 위해선 연간 생산금액이 500억 원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며 “그 이하 회사들은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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