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지방권력 15년]日 “잊지말자 유바리市”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관광사업 과잉투자로 파산
지방재정 건전화 입법 계기 돼

2006년 6월 20일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유바리(夕張) 시의 고토 겐지(後藤健二) 시장이 시의회에 나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재정재건단체 신청을 하기로 했습니다.” 기업으로 따지면 파산 신청을 한 것이다. 지자체의 파산 선언으로 일본 열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때 광산이 24개에 이를 만큼 번성했던 유바리 시는 1990년 마지막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세 수입이 급감했다. 시는 관광산업에 눈을 돌렸다. 폐광을 석탄박물관으로 꾸미고 놀이공원을 짓고 대규모 국제영화제를 열었다. 투자금은 지방채를 발행해 마련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유바리 시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5년 시의 누적적자는 632억 엔(당시 환율로 약 5000억 원). 한 해 시 예산(45억 엔)의 14배에 달했다.

파산 신청을 한 유바리 시는 눈물겨운 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20년간 빚을 갚기 위해 시청 직원을 270명에서 70명으로 줄였다. 남은 직원들의 월급도 30∼60% 삭감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자 학교를 통폐합하고 공공요금을 대폭 올렸다. 노인들을 위한 대중교통 할인혜택도 없앴다.

전문가들은 유바리 시 파산의 근본 원인에 대해 ‘균형발전’을 내세운 일본 정부가 지자체의 재정상황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분별한 투자를 부추긴 결과라고 분석했다. 지방재정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일본은 지난해 4월부터 ‘지방공공단체의 재정건전화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 뉴욕 시, 워싱턴 DC, 마이애미 시, 캘리포니아 주 등이 잇달아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재정지원과 감독을 받았다. 지방자치 경험이 오래된 선진국들조차 지자체의 파산을 겪은 뒤에야 제도 보완에 나선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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