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현금영수증 의무화 한 달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5월 6일 03시 00분


영수증 발행액 50% 늘어 ‘숨겨진 소득’ 3조 드러날 듯

4월 초 대전 S예식장에서는 하객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이 열렸다. 식이 끝난 뒤 신랑과 신부 측 혼주는 각자 받은 축의금으로 결혼식 비용 1500만 원을 현금으로 정산했다. 다음 날 신부 측 관계자 A 씨는 예식장이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며 관할 세무서에 신고했다.

세무서는 현장조사를 거쳐 예식장에 6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태료는 원래 미발급 금액의 50%인 750만 원이지만 예식장 측이 반발을 하지 않고 자진 납부했기 때문에 깎아준 것”이라며 “조만간 신고자 A 씨에게 포상금 3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고소득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4월부터 시행한 전문직 현금영수증 의무화제도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국세청은 제도 도입 후 한 달간의 현금영수증 발급 추이로 볼 때 올해에만 약 3조 원의 세원(稅源)이 새로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해당 업계는 그동안 숨겨왔던 소득이 노출돼 비상이 걸렸다.

국세청은 지난달 전문직과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에 대해 고객 요청이 없어도 의무적으로 영수증을 발급하도록 한 결과 해당 업종의 현금영수증 발행액이 1년 전보다 약 50% 늘어났다고 5일 밝혔다. 현금영수증 의무화 대상은 변호사, 의사, 회계사, 세무사, 학원, 부동산중개업소, 예식장, 장례식장, 골프장 등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지난해 해당 업종이 발행한 현금영수증 규모가 약 7조5000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최소한 3조 원의 숨겨진 세원이 노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러난 세원의 10%를 세금으로 걷는다고 가정하면 증세 없이 약 3000억 원의 세수(稅收)가 늘어난다. 지난 한 해 봉급생활자 30만 명이 낸 근로소득세와 맞먹는 금액이다.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 둘러싼 3색 표정▼

전문직들 전전긍긍 “과태료 무서워”
稅파라치 호시탐탐 “신고하면 짭짤”
세무사는 싱글벙글 “상담특수 웬떡”

몸사리는 변호사-의사-학원장
“현금할인 NO” 영수증 발급
“신고소득 늘면 세무조사 걱정”


그동안 정부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탈세를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현금영수증 의무화와 함께 신고자에게 건당 최고 300만 원(미발급 금액의 20%)을 주는 세(稅)파라치제도와 과태료를 도입하면서 음성소득이 급속히 양성화되고 있다.

현금 거래가 오랜 관행이던 변호사업계도 달라졌다. 서울 서초구의 소규모 로펌에서 일하는 이모 변호사는 “착수금이 500만 원이면 부가가치세 50만 원을 합쳐 550만 원을 받는데 예전에는 현금으로 받으면서 약간 깎아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해 깎아주지 않는다”며 “이에 따라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고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브로커에게 수임료의 30%를 떼어주며 사건을 수임하던 일부 변호사는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 계속 브로커를 쓸지를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도 몸을 사리고 있다. 경기 군포시의 한 치과의사는 “현금을 내는 대신 할인을 받은 환자가 신고까지 하면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어 무조건 현금영수증을 발급한다”며 “시범케이스로 걸릴까 봐 일선 의사들이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장례식장 관계자는 “대형 업체는 대부분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만 영세업체들은 경영이 어렵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치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기준이 30만 원 이상이다 보니 편법도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학원 원장은 “중학생 종합반은 31만 원을 받는데 단골이면 2만 원을 깎아주면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간다”고 털어놓았다. 학원가에는 ‘세파라치 식별 요령’도 나돌고 있다. 학원비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면서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으면 수상하다는 식이다.

반면 세무사업계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학원세무 전문가인 박재형 세무사는 “현금영수증과 관련해 학원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며 “3월 중순 이후 상담이 3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현금영수증 발급에 따라 신고소득이 갑자기 늘면서 세무조사를 받을 것을 걱정하는 전문직도 많다. 한 한의사는 “지난해 신고한 연간소득이 2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1억 원 이상 늘어날 것 같다”며 “세무서에서 소득이 급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에는 지난달 말까지 50건의 현금영수증 미발급 신고가 들어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부동산중개업이 20건으로 가장 많고 병원도 15건이나 됐다”며 “신고된 병원에는 종합병원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철중 기자 tn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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