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씨(64)는 회사가 자금난에 빠지자 예전의 버릇을 떠올렸다. 어음사기 등 전과가 있는 이 씨는 동생 이모 씨(59·자영업)를 꼬드겨 거짓 거래서를 작성했다. 물건을 산 것처럼 꾸며 동생에게 납품대금으로 약속어음을 발행해줬고 동생은 그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해 형에게 현금으로 돌려줬다. ‘돌려막기’ 방식으로 정상거래를 위장한 형제는 은행의 신뢰가 쌓이자 어음 판매책까지 끌어들인 뒤 주로 자영업자들에게 대량으로 어음을 돌렸다. 2007년 10월 이 씨 형제는 회사 부도를 선언하고 차익을 챙겨 잠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통현산업개발과 철갑종합상사라는 유령회사를 차려 놓고 2005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거래 은행 4곳에서 받은 6500억 원대의 어음 535장을 불법으로 판매해 16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이 씨를 구속하고 동생 이 씨를 비롯한 공범 1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6일 밝혔다.
이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와 공범 박모 씨(58)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운 회사 명의로 당좌를 개설한 뒤 어음을 교부받았다. 일단 은행의 신뢰를 쌓기 위해 수억 원이 든 계좌를 만들어 놓고 공범들끼리 수백만 원짜리 소액 어음을 한 달 단위로 꾸준히 결제했다. 은행의 신용을 얻자 더 많은 어음을 교부받았고 액면가 1000만∼5000만 원의 어음을 자영업자들에게 장당 280만∼300만 원에 팔았다. 이들은 ‘부도 D-데이’까지 미리 정해놓고 어음이 7, 8단계 유통될 즈음이면 회사를 부도내고 도망쳤다. 피해는 400여 명의 자영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어음을 발행한 시중은행 4곳은 어음이 정상적으로 유통되고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이 씨 등은 은행에 어음발행명세서와 세금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해 제출했지만 4년간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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