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고의 시름이 씻어지도록/한자리에 연거푸 술을 마시네/좋은 밤 얘기는 길어만 가고/달이 밝아 잠에 못 들게 하네/취하여 고요한 산에 누우니/천지가 곧 베개이고 이불이어라.’ 당나라 때 시인 이태백(701∼762)이 쓴 ‘우인회숙(벗과 함께 잠자며)’이라는 시다.
“행복과 감동을 주는
디자이너 되는게 꿈”
농림수산식품부가 막걸리 대중화를 위해 마련한 ‘막걸리 표준잔 공모전’에서 경북대 박완수 씨(25·시각디자인과 3학년)와 영남대 박영동 씨(25·산업디자인과 3학년)가 함께 출품한 잔이 디자인 부문 수상작으로 최근 선정됐다. 두 사람은 이태백의 시를 떠올리며 잔을 구상했다. 한동네(대구 달서구 두류동)에 사는 이들은 중학교 1학년 때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더 자주 어울렸고, 고교와 대학은 다르지만 디자이너의 꿈은 같았다. “완수야, 우리가 자주 먹는 막걸리니까 이거 우리 한번 같이 해보자.” 영동 씨는 올해 초 이 공모전을 알고 이같이 제안했다. 둘은 동네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고민을 시작했다. 서로 막걸리 잔을 주고받다가 문득 ‘달’이 떠올랐다. 밥그릇 비슷한 잔에 가득 담긴 하얀 막걸리가 달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달을 어떻게 잔 속에 담을 수 있을까?’ 이들은 우선 달과 술이 버무려진 멋진 표현을 찾기로 했다. 완수 씨는 “이태백의 이 시를 읽는 순간 무릎을 쳤다”며 “‘우인회숙’에는 달과 술, 우정, 삶, 멋스러움 같은 요소들이 잘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막걸리 잔의 이름도 이 시에 나오는 ‘호월’(크고 밝은 달)로 정했다. ‘둥근달 모양만 있으면 안 되잖아. 잔이 빌수록 달 모양이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두 사람은 이 고민을 잔의 안쪽을 볼록하게 만들어 해결했다. 잔이 가득 찼을 때는 ‘호월’이지만 마실수록 볼록한 부분 때문에 점점 초승달 모양으로 바뀐다는 것.
중학생 때부터 우정을 이어온 박완수 씨(왼쪽)와 박영동 씨가 5일 동네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 사진 제공 박영동 씨안쪽은 검은색, 바깥은 빨간색으로 잔의 색깔에도 신경을 썼다. 검은색은 어두운 밤에 밝은 달(막걸리)을 담아내는 색이며, 빨강은 젊음을 상징한다. 지름 12cm, 높이 7cm 크기의 호월배는 이렇게 태어났다. 두 사람은 ‘행복’과 ‘감동’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번 공모전에서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다른 공모전에 출품할 작품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호월배로 그냥 막걸리가 아니라 달과 우정이 둥실 떠있는 막걸리를 마시면 더 멋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며 밝게 웃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