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초등학교 교과서엔 얼마나 많은 한자어가 나올까? 다음은 초등학교 5학년 국어(읽기) 교과서 지문인 ‘다람쥐와 청설모’ 중 일부.
표현(表現)이 적절(適切)한지 생각하며 ‘다람쥐와 청설모’를 읽어 봅시다.
나무타기의 명수(名手)들 -우한경-
숲이 우거진 곳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동물(動物)이 다람쥐입니다. 소리도 없이 어느 틈엔가 잽싸게 나무 위로 올라가서 조그만 앞니로 도토리를 깨무는 모습(模襲)을 보면 여간(如干) 귀엽지 않습니다. 또, 나무타기의 명수(名手)라는 사실(事實)도 알 수 있지요. 다람쥐는 주로 땅 위에서 생활(生活)하지만, 위험(危險)이 닥치거나 먹이를 찾을 때에는 나무 위로 올라가기도 합니다.(…) 또, 크고 두툼한 꼬리를 펴서 균형(均衡)을 잡고 속도(速度)를 줄이며, 높은 나뭇가지에서 낮은 나뭇가지로 뛰어내립니다.
청설모는 다람쥐와는 달리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生活)하고, 가끔 땅에 내려옵니다. (…) 청설모는 민첩(敏捷)한 동작(動作)과 우아(優雅)한 자태(姿態)로, 나무를 마음대로 오르내리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건너뜁니다. 건너뛰는 거리(距離)는 1.5미터 정도(程度)이며, 꼬리를 수평(水平)으로 뻗어 균형(均衡)을 잡습니다.(…) 암수 다람쥐는 색깔과 모양(模樣)이 같고, 몸길이는 약 15센티미터, 꼬리 길이는 약 10센티미터이며, 몸무게는 80∼90그램 정도(程度)밖에 되지 않습니다. 청설모의 등에는 부드럽고 짧은 담황색(淡黃色)의 털이 나 있으며, 귀 끝에는 약 3센티미터의 털이 나 있습니다.(…) 주로 울창(鬱蒼)한 침엽수림(針葉樹林)에서 많이 살고 있으며, 활엽수림(闊葉樹林)이나 바위가 많은 곳에도 삽니다. 특히, 계곡(溪谷)부근(附近)의 숲에 가장 많이 삽니다.(이하 생략)
《4일 오후 1시 반 서울 양천구 목동초등학교 6학년 6반 교실. 5교시 국어 읽기 수업이 한창이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설명에 집중하며 칠판에 적힌 내용을 노트에 필기하느라 분주하다. 그때 한 학생이 책상 위에 있는 ‘실용한자사전’을 펼쳤다. 사전에서 찾은 단어는 ‘음미(吟味)’. 학생은 노트에 한자로 ‘吟味’라고 쓴 뒤 그 옆에 ‘읊을 음, 맛 미’라고 각 한자의 뜻과 음을 메모했다. 그리곤 ‘시나 노래를 읊어 그 맛을 봄’이란 단어의 뜻을 적었다. 목동초등학교는 올해부터 국어뿐 아니라 모든 수업에 한자(漢字)를 활용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수업 중 모르는 단어나 개념이 나오면 학생 스스로 실용한자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보는 것. 학생들은 수업시작 전 교과서, 필기구 외에 실용한자사전을 반드시 준비한다. 이 학교 성명제 교장은 “교과서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한자어로 된 단어의 뜻을 아는 것은 필수”라며 “학생들이 자연스레 한자를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을 활용한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吟味… 鈍角… 斥和碑… 뜻을 알고나니 개념이 쏙쏙 이젠 무조건 외우지 않아요
아침자율학습이나 방과 후 수업을 활용해 한자교육을 실시하는 초등학교가 늘고 있다. 한자어로 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아예 시험문제 자체가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풀 엄두도 못내는 학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초등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한자를 모르면 의미 파악이 힘든 용어가 대거 등장하므로 한자실력이 시험성적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목동초등학교의 4학년 사회과목시험에 나온 ‘척화비가 무엇인지 설명하시오’란 문제를 보자. 대부분의 학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척화비의 의미만을 단순 암기한다. 하지만 한자의 뜻을 아는 학생이라면 ‘척화비(斥和碑)란 다른 나라의 화해(和)를 물리치겠다(斥)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비석(碑)’으로 뜻과 음을 되뇌며 문제를 한결 쉽게 푼다.
고려대 한문학과 윤재민 교수는 “초등 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개념은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면서 “따라서 한자어로 된 기본개념의 정확한 뜻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목동초등학교 6학년 김지현 양(12·서울 양천구)을 보자. 평소 수학이 취약과목이었던 김 양은 수학에 나오는 ‘예각’ ‘둔각’이나 ‘수직’ ‘수평’과 같은 개념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이런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 양은 한자를 먼저 이해함으로써 개념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예각’은 ‘날카로운(銳) 뿔(角)모양’으로, ‘둔각’은 ‘둔한(鈍) 뿔(角)모양’으로 각각 한자의 뜻을 풀어 개념을 익혔다. 김 양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에 문제를 풀 때 실수가 잦았는데, 한자를 공부한 뒤엔 이런 실수가 많이 줄었다”면서 “덕분에 이번 중간고사 수학점수가 90점 이상으로 올랐다”고 말했다.
올해 한자급수시험에서 준5급을 딴 인천 논현초등학교 4학년 윤세미 양(10·인천 남동구). 윤 양은 평소 신문을 읽으면서 모르는 한자어를 익힌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제시한 타협안을 시위대가 받아들였다’란 문장에선 한자어사전을 찾아가며 ‘제시→어떤 뜻을 글이나 말로 드러내 보임’ ‘타협→서로 양보해 협의함’이라고 단어의 뜻을 파악한다. 이후 신문의 문장을 ‘정부에서 서로 양보해 협의하자는 뜻을 담은 글(말)을 시위대가 받아들였다’라고 스스로 풀어 해석한다. 찾아본 한자어는 ‘나만의 한자노트’에 따로 정리해 둔다. 윤 양은 “4학년 진학 후 어려워진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 평소 연습한 ‘문장읽기’ 방법과 정리습관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초등 고학년과 중학교과정으로 올라갈수록 자주 등장하는 ‘동음이의어’도 난관이다. 학생들이 곤란을 겪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부정’. 수학에서 ‘ax=b이고 a=0, b=0일 때 x의 값’을 묻는 문제의 답은 ‘값을 결정할 수 없다’는 뜻의 ‘부정(不定)’이지만, 적잖은 학생들은 이를 ‘옳지 않다’는 뜻의 ‘부정(不正)’과 혼동한다.
한자마루 서예나 팀장은 “같은 단어라도 상황에 따라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악해야 한다”며 “특히 수학에서 나오는 핵심개념은 반드시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넘어가지 않으면 초등 고학년이 됐을 때 ‘어휘력’에 문제를 겪을 수 있다. 초등 저학년 땐 학교시험의 난도가 높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는 ‘시험점수’로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적이 높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아이가 책을 읽고도 정작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닌지, 시험문제를 풀 때 문제가 무엇을 묻는지 알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푸는 게 아닌지를 눈여겨보고 초등학교 입학 전이나 초등저학년 때부터 한자교육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기 양평초등학교 3학년 김윤서 군(9·경기 양평군)이 한자공부를 시작한 건 1학년 겨울방학 때. ‘문제가 조금만 길어져도 뭘 묻는건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김 군을 보고 부모는 한자공부를 시키기로 결정했다. 김 군은 매일 20분씩 ‘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한자어, ‘발음과 뜻이 같진 않지만 개념구분이 어려운’ 한자어 등을 공부했다.
김 군은 “꾸준히 한자공부를 하다 보니 나중엔 ‘물체(物體)’와 ‘물질(物質)’처럼 의미가 비슷해 보이는 단어의 차이점도 구분할 수 있게 됐다”면서 “모든 과목에서 시험문제를 완벽히 이해하고 풀게 돼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평균 99점을 유지하는 김 군의 목표는 한자급수시험에서 4급을 따는 것. 현재 5급까지 딴 김 군은 처음엔 자기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한자시험을 치렀지만, 이젠 시험이 한자를 공부하는 ‘즐거운’ 목표가 됐다. 김 군은 “한자공부를 하다 보면 어려운 한자나 단어가 나와 자칫 흥미를 잃기 쉽다”면서 “이때 한자시험에 도전하면 실력도 확인할 수 있고 한자공부를 할 동기부여도 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