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만 해도 앉았다 일어서기나 팔굽혀펴기 같은 벌을 받으면 하기 싫은 걸 하니까 반항심도 생기고 선생님이 자꾸 멀게만 느껴졌어요. 그런데 요즘은 벌로 줄넘기나 농구 자유투를 하니까 기분도 나쁘지 않고 선생님과도 가까워지게 됐어요.”
대구 달성군 논공중학교 3학년 김현중 군(15)군은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학교명찰이나 교복 넥타이를 집에 두고 올 때가 많다. 며칠 전엔 ‘복장불량’으로 교문에서 적발당한 김 군에게 벌칙이 주어졌다. 배구 언더핸드 토스를 20회 하는 벌이었다.
김 군이 받은 벌은 중학교 체육교과 수행평가 종목 중 하나다. 김 군이 언더핸드 토스를 시작하자, 생활지도담당 유진원 교사(44)는 김 군이 손목 위에서 공을 정확히 맞히고 팔은 어깨이상 높이 들지 않도록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벌로 수행평가 연습을 하니까 도움이 되어 오히려 벌을 ‘열심히’ 받게 돼요. 언더핸드 토스를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면서 선생님이 ‘다음엔 꼭 명찰을 달고 오라’고 하셨어요. 명찰을 깜빡해서 오늘도 혼나고 하루를 시작하는 줄 알았는데, 칭찬을 받으니까 의외였어요.”
체벌이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칠까? 천재교육이 스승의 날을 맞아 지난달 2∼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 초중고생과 학부모 860여명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11%가 ‘많이 혼냈던 선생님’이라고 답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벌이라고 항상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것은 아니다. 학생의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때론 학생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벌도 있다.
경기 수원시의 한 고등학교 3학년 이모 양(18)은 1학년 때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물품만 책상에 올려놓기’ ‘짱구나 도라애몽(만화 캐릭터)이 그려진 캐릭터 양말 신지 않기’ ‘손톱 단정하게 깎고 다니기’처럼 사소한 일까지 검사하는 담임선생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양은 청소 시간에 씩씩거리며 큰 소리로 담임선생님을 험담했다. 순간 아이들은 사색이 됐다. 교탁을 등지고 서 있던 이 양은 키가 180cm가 넘는 담임선생님이 쭈그려 앉아서 교실 바닥에 붙은 껌을 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이 양을 교무실 앞에 앉혀 놓았다.
“‘엄청 혼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연락하지 않을까’란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1시간 뒤 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시더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교사가 됐는데 여러 가지 규칙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준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양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겠다’고 결심한 이 양은 담임선생님이 만든 규칙을 준수하는 학생으로 변했다.
“선생님에게 성적이 오른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주말에도 독서실에서 4시간씩 공부했어요. 1학년 말에는 성적도 반 35등에서 10등 안쪽으로 올랐어요.”
벌로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경기 용인시의 한 중학교 2학년 이모 양(14)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잠시 자유시간을 줬을 때, 몰래 MP3플레이어로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다가 적발됐다. 이 양에겐 ‘수업시간에 학생으로서 어떻게 수업에 임해야하는지’를 주제로 한 글을 쓰는 벌이 주어졌다.
“처음엔 주제도 어렵고 글 쓰는 게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래의 자신에게 편지쓰기’나 ‘미래의 아내와 남편에게 쓰는 편지’ 같은 글들을 ‘벌’로 쓰다보니 이젠 글쓰기 벌을 받는 게 오히려 즐거워졌어요.”
이 양은 ‘미래의 자신’에게 ‘너는 지금도 잘하니까 커서도 잘 할 거야’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이 양은 “집에서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 때도 학교에서 익힌 실력으로 반성문을 쓰면 어머니가 감동하고 넘어가 주시는 경우도 있다”며 웃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