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전자현수막 ‘인허가권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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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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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미관 살리고 불법 천 현수막 대체로 年 1300억 절약한다는데…
국회 개정안 발의 후 논란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역 앞에 설치된 전자현수막 모습. 세계 최초로 개발됐지만 설치 허가권한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 해외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서초구청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역 앞에 설치된 전자현수막 모습. 세계 최초로 개발됐지만 설치 허가권한을 놓고 논란이 일면서 해외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서초구청
서울 강남역 근처나 을지로 사거리 등 시내 주요 도로를 지나다 보면 반짝거리는 전광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1분 단위로 광고 내용이 바뀌는 전광판 한 개가 수십 개의 기존의 현수막 역할을 대신한다. 2006년 국내 정보기술(IT) 서비스업체 LG CNS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전자현수막이다.

전자현수막은 길거리에 지저분하게 늘어선 천 현수막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천 현수막은 자원 낭비가 심한 데다 현행 규정상 모두 태워 없애야 한다. 한국LED보급협회에 따르면 전자현수막을 설치해 절감할 수 있는 연간 비용은 약 1300억 원에 이른다. 도로 요지마다 어지럽게 매달리는 불법 현수막 문제도 전자현수막이 해결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 서울시 “통일된 설치 기준 필요”

하지만 지금까지 서울 시내에 설치된 전자현수막은 노원구와 은평구, 중구, 서초구에 16개뿐이다. 전자현수막 도입이 지연되고 있는 배경에는 서울시와 자치구들이 전자현수막 인허가권을 두고 벌이는 줄다리기가 있다. 서울시는 도시 미관의 통일성을 위해 상급기관이 전자현수막 설치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치구는 이를 자치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다. 갈등은 지난달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재 의원이 옥외광고물 등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심화됐다.

전자현수막을 옥외광고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이 개정안에는 전자현수막을 설치하려면 시도지사의 승인이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기존 법에는 시장 군수 구청장 권한으로 규정돼 있다.

서울시는 개정안을 크게 반기고 있다. 자치구마다 제각각 모양과 밝기가 다른 현수막을 설치하면 도시 전체 미관 관리에 문제가 생긴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현란하거나 동영상이 포함돼 있는 경우 운전자 시야를 방해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시 관계자는 “중구가 최근 을지로 사거리에 설치한 전자현수막은 야간 조도가 서울시 야간경관 가이드라인 권고치보다 두 배 가까이 밝아 시정조치를 내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강남대로를 또 다른 사례로 든다. 강남구 쪽 도로에는 전자현수막이 일렬로 설치돼 있는데, 서초구 관할인 도로 건너편에는 없어 통일성이 떨어진다는 것. 서울시 관계자는 “개정안 통과에 대비해 현재 각 자치구의 신규 전자현수막 설치를 금지한 상태”라며 “이미 만든 전자현수막에 대해서는 시 야간경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고 동영상은 정지 화면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자현수막을 부드러운 파스텔 색상으로 제작하는 등 일관된 디자인으로 통일할 방침이다.

○ 자치구 “자치권 침해”

이에 대해 자치구들은 명백한 자치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2006년 서울에서 가장 먼저 전자현수막을 도입한 노원구 측은 “시에서 이런 부분까지 규제하려 하는 것은 시대 역행적 발상”이라며 “지역 현장을 잘 아는 자치구에서 관리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지역적 특성이나 주변 건물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 현수막을 설치해야 광고효과가 높다는 것. 2007년 강남역 사거리에 현수막을 설치한 서초구 역시 “3년여간 운영하면서 주민 민원을 반영해 우리 나름의 운영 원칙과 노하우가 생겼다”며 “시에서 가이드라인만 제공해도 충분한데 아예 법적 권한을 가져가려는 건 욕심”이라고 말했다.

시와 자치구가 벌이는 ‘핑퐁 규제’ 사이에서 가장 답답한 건 관련 업체들이다. 국내에서 아직까지 관련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에 해외 수출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출 대상국에서는 한국 시장이 충분히 활성화된 것을 확인한 뒤 자국 도입을 검토하기 때문. LG CNS 관계자는 “아직 해외에선 전자현수막이 거의 활성화되지 않아서 기술 선점을 하기 좋은 조건”이라며 “다만 해외에서 관심을 가질 만큼 국내 시장이 성장하지 못해 아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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