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버림받은 나무들, 청와대 출신 친구도 있고 개발에 밀려 오기도 하죠
여기서 수술뒤 건강 찾아 ‘입양’되기도 한답니다
지난달 22일 경기 하남시 선동 한강둔치 내 숲 속에서는 대수술이 벌어졌다. 수술을 받게 된 ‘환자’는 40년생 수양버들 한 그루. 줄기 곳곳에 구멍이 뚫려 고사 위기에 처하자 긴급히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우선 시커멓게 변한 껍질이 모두 제거됐다. 이어 톱질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썩은 부분이 잘려나갔다. 구멍에 완충재를 넣고 영양제를 주사한 뒤 톱밥으로 만든 인공껍질을 마치 사람의 피부처럼 이식하는 작업을 끝으로 이틀간에 걸친 수술이 마무리됐다.
수술이 이뤄진 곳은 바로 ‘나무고아원’이다. 10년 전인 2000년 봄 하남시가 공사장에서 베일 위기에 놓인 나무들을 옮겨놓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28만 m²(약 8만5000평) 규모의 숲이다. 수술을 받은 수양버들 역시 2002년 도로 확장공사 때문에 원래 있던 자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지금까지 전국 공사장 등지에서 나무고아원으로 들어온 나무는 약 1만2000그루에 이른다. ○ 버림받은 나무들의 쉼터
나무고아원의 시초는 하남시 거리를 수놓았던 버즘나무다. 2000년 초 하남시가 전통수종인 이팝나무로 가로수를 교체키로 하면서 730여 그루의 버즘나무가 갈 곳을 잃게 됐다. 하남시는 버즘나무를 베어 버리는 대신 한강둔치에 옮겨 심었다. 적응력이 좋은 버즘나무는 새로운 터에서도 뿌리를 잘 내렸다. 하남시는 이곳에 수목원을 조성키로 하고 각종 공사 등으로 버려질 위기에 놓인 나무를 대상으로 기증운동을 펼쳤다.
팔당대교 연결도로 공사현장에서 아름드리 소나무 130여 그루가 기증됐다. 청와대에서는 부속건물 공사장에서 버려질 위기에 놓였던 느티나무 등 8종 35그루의 나무가 옮겨왔다. 서울의 한 군부대도 군용시설을 지으면서 베어낼 뻔한 감나무 등 6종 13그루를 보냈다. 하남시는 2002년 수목원을 정식 개장하면서 이곳에 ‘나무고아원’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버려지거나 상처 입은 나무들을 다시 보살펴 잘 자라게 하는 곳이라는 의미다.
개장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나무 기증이 잇달았다. 각종 공공기관과 건설업체 그리고 개인이 적게는 한두 그루에서 많게는 수천 그루까지 보내왔다. 현재까지 이곳에 옮겨온 나무 가운데 절반가량이 하남 외 지역에서 왔다.
상당수 나무는 이식 과정에서 병이 들거나 상처가 나기 일쑤다. 하남시는 연간 6000만 원가량의 예산을 들여 한약찌꺼기나 유기질비료 등을 공급해 나무를 가꾸고 있다. 이렇게 건강을 회복한 나무들은 ‘입양’을 통해 새 삶을 살게 된다. 2006년 소나무 110여 그루가 하남문화예술회관 조경수로 공급되는 등 지금까지 1200여 그루가 공공시설 조경수나 가로수 등으로 재활용됐다.
○ 5년 만에 나무고아원 이름 되찾아
나무고아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논란도 많았다. 개장 초기에는 각종 봉사단체에서 “고아들을 보살피고 싶다”며 자원봉사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도 많았다. 어린이들이 있는 진짜 고아원으로 착각한 것이다. 무엇보다 고아원을 비하하고 희화화한다는 지적이 가장 많았다. 결국 개장 2년 만인 2004년 10월 하남수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나무고아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조재훈 하남시 도시공원팀장(49)은 “어감 때문에 수목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개장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차원에서 다시 나무고아원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말했다. 하남시는 현재 이곳에 근린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하남시는 국유지인 나무고아원 터의 소유권 문제가 정리되는 대로 올해 안에 근린공원 공사를 시작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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