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관행 타협 없다” 고수
천안함 등 분위기에 부담 느낀
노조 전향적 태도도 타결 한몫
“불합리한 것을 바로잡는다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했습니다. 노동조합에 상식적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꾸자고 했어요.”
12일 오전 4시로 예정됐던 전국철도노조의 총파업을 1시간 반가량 남기고 극적인 단체협약 타결을 이끌어 낸 허준영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은 이날 오전 정부대전청사를 찾아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코레일이 거의 매년 이어지던 파업의 고리를 끊고 단협 타결에 사실상 성공한 것은 불합리한 단협을 개정하겠다는 원칙을 고수한 허 사장의 의지가 큰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많다.
○ 경영권 침해 조항은 많이 바뀔 듯
11일 오후 3시 시작된 교섭은 수차례 정회와 속개를 거듭한 끝에 12일 오전 2시 반경 잠정 타결됐다. 잠정 합의안은 노조의 확대쟁의대책위원회 인준을 거쳐 이르면 13일 오전 중 최종 타결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노사 양측은 최종 타결 전까지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회사가 요구한 120개 단협 조항 개정안(전체 단협 조항 170여 개)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측이 노조 간부를 인사 발령 낼 때 협의해야 하는 범위가 크게 줄어들었다. 이 조항은 사측이 경영권 침해 사례로 지적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글날, 제헌절, 창립기념일, 노조창립일 등 과도하게 보장된 유급휴일을 대부분 없앤 것으로 전해졌다.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의 전보 금지는 금지 대신 제한으로 완화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근속승진, 인원 감축 시 협의 등의 조항은 사측이 요구를 철회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 타결 배경
코레일 안팎에선 이번 협상 타결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등 상급 노동단체와 연계한 정치적 성향의 파업을 거듭한 전국철도노조의 성향을 바꿀 전기가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파업 참여를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해지는 등 교섭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과거와 달랐다”고 전했다.
허 사장은 “파업 참여 시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의견을 고수해 노조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협상 과정에서도 노조 측의 다양한 요구에 대해 “이번 교섭은 직원의 복지 수준을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타협의 여지는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허 사장은 타결을 이끌어낸 뒤 “파업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에 열흘 밤을 새워서라도 타결을 하고 싶었다”며 “철도 발전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는 데 동의한 노조도 전향적으로 나와 타결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철도노조가 천안함 침몰 사건 등으로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국민의 발을 묶는 파업을 벌이는 데 부담을 느낀 데다 이달 24일 단협이 해지되면 활동이 사실상 어려워진다고 본 것도 협상 타결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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