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파업 고리 끊은 허준영 코레일 사장
약자 내세워 법-원칙 위반
잘못된 노사관계 바로잡아야
파업 철회한 마당에…
민영화 논란 언급 않을 것
허준영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이 14일 서울 중구 봉래동 코레일 서울사옥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국철도노조와의 교섭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특별하고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이상한 것입니다.” 14일 아침 서울 중구 봉래동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서울사옥에서 만난 허준영 코레일 사장에게 법과 원칙을 끝까지 고수해 철도 파업을 막고 전국철도노조와의 교섭 타결을 이끌어 낸 데 대한 세간의 반응을 전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우리 사회가 문화, 체육, 경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지만 사회공동체의 통합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바른 사회’를 위한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상한 문화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허 사장은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잘못 자리 잡은 ‘약자 개념’을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과 원칙을 뛰어넘어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경찰학교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신임 순경 교육장에 가보니 ‘우리는 약자의 편에 선다’는 표어가 곳곳에 붙어 있더군요. 모두 떼라고 했습니다. 약자와 강자의 구분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자칫하면 약자를 가장한 세력이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는 이번 철도노조와 가진 협상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결성 초기와 달리 지금 노조는 무조건 약자가 아니라 법 위에 군림하는 강자에 가깝다”며 “노조가 인사권에 개입하고 불법적인 정치 파업을 보장받는 등 명백히 잘못된 관행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 우리 사회는 이념 성향에 따라 좌우를 오가는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왔지만 지금은 다르다”며 “이제는 사회가 발전한 만큼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옆차에 양보도 하고 질서도 지키면서 빠르게 달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 사장은 노조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파업 유도 의혹이 제기됐을 때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해온 내 신념에 흠집을 내는 것 같아 서운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럴 때마다 ‘어린 임금의 후견인을 할 정도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책임감 있는 신하’라는 의미의 경구(警句)인 ‘탁고기명(託孤寄命)’을 마음에 새겼다”고 했다.
허 사장은 노조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자칫 경영진이 소홀해질 수 있는 복지 문제 등을 보완하는 데 노조의 역할은 필수적”이라며 “구시대적인 집단따돌림문화, 완장문화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지 노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협상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코레일 민영화 논란에 대해서는 “파업을 철회한 만큼 더 언급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허 사장은 12일 노사교섭을 마무리한 뒤 13일부터 경남 창원시와 강원도의 현장을 일일이 방문하는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14일에는 노조와 단협 체결식을 가졌다. “이제 노조가 발목을 잡는다는 핑계도 없어졌으니 더욱 혼신의 힘을 다해 코레일을 발전시키겠습니다. 철도노조도 문화가 많이 바뀌어 국민으로부터 박수 받는 국민노조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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