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대 건축학과 전영일 교수 ‘나눔의 삶’ 가르침
대중교통 이용 돈 아끼고
적금털어 70명에 3000만원
장학생들 ‘취직후 기부’ 서약
액수- 기한 제한없이 베풂 동참
케이크에 꽂혀 있던 조그만 초 16개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13일 오후 8시경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근처의 한 식당에서는 특별한 스승의 날 행사가 열렸다. 동국대 건축학과 재학생과 졸업생 30여 명이 한 교수님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주인공은 건축학과 전영일 교수(56)와 올해로 16세가 된 전 교수의 ‘일현장학금’이었다. 제자들은 ‘스승의 은혜’를 열창하며 전 교수에게 근사한 넥타이를 선물로 건넸다. “이제 내 정년은 9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일현장학금은 오래 이어졌으면 좋겠구나.” 촛불을 힘차게 불어 끈 전 교수가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전 교수는 1995년부터 16년 내리 건축학과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장학금을 만들기로 결심한 다음부터 출퇴근길에 대중교통만 이용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적금에 들고 또 월급을 보태 지금까지 3000만 원이 넘는 돈을 장학금에 기부했다. 동국대 최장기 기부 기록이다.
전 교수의 기부는 1983년 영국 유학 시기부터 시작됐다. 1983년 국비유학생으로 영국에 머무르다 아프리카의 최빈국 중 하나인 잠비아 어린이 한 명을 지원하며 기부를 시작했다. 1987년 귀국한 다음에도 유난히 기부에 인색한 한국 사회에 모범을 보이려 고민하다 아내 김현순 씨(53)와 함께 각자 이름에서 한 글자씩만 딴 ‘일현장학금’을 만들었다.
일현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졸업 후 취직을 하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금을 기부하겠다는 서약서를 써야 한다는 것. 전 교수가 제자들에게 나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만든 ‘교육용’ 서약서여서 액수나 기한의 조건은 없다. 그동안 일현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70명이 넘는다. 매년 4, 5명이 많게는 70만 원에서 적게는 50만 원씩 ‘교수님 장학금’을 받아온 셈이다.
13일 열린 행사에는 장학금을 받았던 졸업생과 올해 장학금을 받는 제자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졸업생 김혜미 씨(28)는 국내의 한 유명 건축설계사사무소에 다니고 있다. 김 씨는 “졸업한 지 3년 만에 내가 받았던 장학금 50만 원을 후배들에게 기부했다”며 “재학시절 비싼 건축모형을 만드는 데 교수님의 장학금이 보탬이 됐다. 당연히 나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록 큰 액수는 아니지만 이렇게 조금씩 모인 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끼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진 전 교수의 기부금액이 제자들이 장학금으로 다시 낸 돈보다 훨씬 많다. 전 교수는 “제자들이 전액을 다 기부하길 바란 것은 아니고 나눔의 가치를 가르쳐주고 싶었을 뿐”이라며 “제자들도 자리가 잡히면 후배들을 도울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에서도 장학금에 쓰라며 돈을 보내왔었어. 허허.” 전 교수는 최근 해외로 취직한 졸업생 김지완 씨(28)가 보내온 기부금 얘기를 꺼내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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