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민망… 실망… 분노… 검사들의 ‘스폰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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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9일 03시 00분


검사 임관선서 실천이 국민 신뢰회복 지름길

17일 저녁 대기업 임원인 A 씨(43)는 고교 동기동창인 모 부장검사에게 “친구들이 여럿 모였으니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고 초대했다가 당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서울 강북의 한 와인바에서 술을 마시던 A 씨가 “룸살롱이 아니니 걱정 말고 오라”고 거듭 안심시켰지만 이 부장은 “룸살롱은 안 간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기 때문이다. A 씨는 “동창인 친구의 말도 안 믿는 걸 보면 요즘 검사들이 스폰서 의혹 파문의 충격이 크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일선 검사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출근 직후 소속 부서 검사들과 차 한잔하는 아침 미팅 때부터 이런저런 푸념이 쏟아져 나온다.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 소환된 검사가 많다는데 제대로 진술할지 모르겠다”거나 “우리가 뭐라고 말한들 누가 믿어주겠느냐” “피의자들 얼굴 대하기가 민망하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는 것. 이번 파문이 불거진 직후 ‘어떤 피의자는 조사를 받으면서 검찰을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여 조사 검사가 어처구니없어 했다’는 말도 돌고 있다.

젊은 검사들은 공개적으로 말은 안 해도 간부급 선배 검사들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선배 간부들은 후배 검사들 볼 때마다 ‘처신 잘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놓고 정작 간부들이 사고를 쳐서 검찰 전체가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것.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여검사들의 시선도 싸늘하다고 한다. 극소수 검사의 부조리 때문에 검찰 전체가 매도당하는 것에 억울해하는 검사들도 있다.

기자가 수년간 검찰을 출입하며 취재한 경험 등에 비춰보면 억울함과 섭섭함을 토로하는 검사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저 고생을 하려고 사법시험 공부해서 검사 됐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검사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부패척결을 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진 검사도 많다.

이런 검사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국민에게 마음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이번 파문의 원인을 놓고 ‘누구 탓이냐’고 따질 만큼 검찰의 상황은 한가롭지 않아 보인다.

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는지 차분하게 생각해보고 자기 혁신을 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 기준은 검사로 처음 임관할 때 외치는 ‘검사선서’에 충실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순간 국가와 국민의 부름을 받고 영광스러운 대한민국 검사의 직에 나섭니다. 나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듯한 검사, 스스로 더 엄격한 바른 검사로서, 혼신의 힘을 기울여 국민을 섬기고 국가에 봉사할 것을 나의 명예를 걸고 굳게 다짐합니다.’

이태훈 사회부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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