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계층따라 또 분단의 벽”
李대통령 기념사서 화합 강조
정세균 “MB 행사 불참 유감”
18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5·1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기념식에 해마다 소복을 입고 한쪽 자리를 지켰던 5·18 희생자 유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는 민주묘지에서 500여 m 떨어진 망월동 옛 5·18묘역에서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따로 기념식을 열었다. 2004년 정부가 5·18기념식을 주관한 이후 행사가 따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갈린 5·18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는 정운찬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와 여야 정치인, 시민 등 2000여 명이 참석했다. 식장에는 좌석이 2700여 석 마련됐지만 밤부터 굵은 빗줄기가 이어진 데다 5·18 관련 단체 회원이 대거 불참해 700여 석이 비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찬 국무총리가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민주영령들의 피땀으로 성취된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가 그 정신과 문화에 있어서도 성숙 발전되고 있는지 거듭 성찰해 봐야 한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화해와 관용’에 기초한 성숙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대통령은 “남북 분단으로 숱한 비극을 겪었으면서도 지역과 계층, 이념 등에 따라 또다시 완고한 분단의 벽을 세우고 있고, 법을 무시한 거리의 정치와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기대는 일이 적지 않다”며 “국가와 국민의 입장에 서서 작은 차이를 넘어 대승적 타협을 이루자”고 강조했다.
정 총리가 이 대통령의 기념사를 읽자 식장에서 100여 m 떨어진 ‘민주의 문’ 아래에 모여 있던 5·18 단체 회원 70여 명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그동안 5·18기념식 추모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식순에서 왜 뺐느냐고 따졌다. 이동계 5·18구속부상자회 사무총장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이 기념식에 두 번이나 빠진 것도 서운한데 5월 단체들이 그토록 부르고 싶어 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뭐냐”고 항의했다.
이날 보훈처는 정 총리가 식을 마치고 퇴장할 때 연주하려던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민중가요인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긴급 대체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흥겨운 민요를 기념식장에서 연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여론에 따라 연주곡을 바꿨다”며 “5월 단체들이 요구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에 연주했다”고 해명했다.
○예견된 파열음
보훈처는 30주년 행사를 2개월 앞두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에서 제외했다. 1980, 90년대 대학가와 각종 시위 집회 현장에서 애창된 이 노래의 가사 중에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는 대목이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에 제외했다는 분석이 있다. 5·18 당사자들은 정부의 의도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5·18 당시 첫 번째 사망자인 김경철 씨의 어머니 임근단 씨(79)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야말로 유족의 한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라며 “30년간 한을 담아 불러온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소통 부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한나라당 광주시당에서 열린 선거대책위 회의에서 “나도 1980년대 초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시위현장에서 매일 불렀던 노래”라며 “엄숙해야 할 기념식장에서 노래 한 곡 부르냐, 안 부르냐 문제를 갖고 분위기를 망친 미숙한 조정 능력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30주년을 맞는 국가기념일인데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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