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담배는 살인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담배의 해로움을 알리던 남자가 시체로 발견된다. 공교롭게도 그가 살해된 장소는 대형 담배회사. 뻔한 사건처럼 보였지만, 피해자가 담배회사의 직원이었음이 밝혀지자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왜 그는 자신의 회사 앞에서 흡연 반대 캠페인을 벌였던 것일까.
이 미스터리의 비밀은 ‘노이즈 마케팅’에 숨어 있었다. 이 담배회사는 기존 담배보다 유해성분이 10분의 1 수준인 순한 담배를 출시할 예정이었다. 회사 측은 흡연자들이 스스로 흡연의 위험성을 자각해야 기존의 담배 대신 순한 담배를 고를 확률이 높아진다고 여겼다. 이런 논리에 따라 일부러 직원으로 하여금 흡연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캠페인을 벌이도록 한 것이었다.
기발한 마케팅 기법이긴 했지만 이면에는 담배회사의 비정한 손익계산표가 담겨 있었다. 이들은 결코 흡연자의 건강을 위해 순한 담배를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니코틴에 중독됐기 때문이다. 대상이 무엇이든 일단 중독되면 여간해서는 끊기 어렵다. 따라서 흡연자가 담배의 위험성을 자각하더라도 금연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대신 불안한 마음에 순한 담배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니코틴에 중독된 흡연자의 신체는 순한 담배 속에 포함된 적은 양의 니코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이다. 여기에 ‘순하니까 조금 더 피워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더해지면 개인당 담배 소비량은 오히려 이전보다 늘어난다. 갑당 가격은 동일하므로 결국 순한 담배 판매는 회사의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
개인의 건강을 담보로 상업성을 드러냈던 이 에피소드는 미국 드라마 ‘CSI: NY’의 세 번째 시즌에 등장했던 이야기다. 이를 접하노라니 최근 들어 출시가 늘어난 일부 친환경 제품들이 떠올랐다.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기존의 제품보다 화학첨가물이 적게 들어간 제품의 소비량이 늘고 있다. ‘썩는 플라스틱’이라는 명칭의 생분해성 플라스틱 등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기존 제품에 비해 환경에 미치는 피해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 드라마의 예처럼 이런 제품들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사용해도 된다는 ‘심리적 덫’이 도사리고 있다. 기존의 소비 패턴을 만족시키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될 여지가 있다.
진정 환경을 위한다면 환경에 덜 해로운 제품을 고르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제품이든 아껴 쓰고 적게 쓰는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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