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버렸더니 하나도 가진 게 없습니다. 괜찮습니다. 저에겐 초원이 있고 저 별들이 있습니다. 외로울 때 초원에 나가면 내 친구들, 사자와 얼룩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 착한 꿈이 있습니다. 하나도 가진 게 없다는 게 이렇게 자유로운 줄 몰랐습니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거주하는 저자는 어느 날 자신이 사는 집의 영국식 정원에 서서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하나도 가진 게 없다’는 말은 재물욕 출세욕 등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통상 갖는 욕심을 버렸다는 뜻이다. 그는 결혼하자마자 그런 욕심을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케냐로 떠났다.
저자는 나이로비 시내에 사파리 전문 여행사를 차렸다. 이 책은 2008년까지 5년간 그가 케냐에서 살면서 보고 겪은 일상의 기록이다. 저자는 현재도 케냐에 살고 있다.
그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삶의 터전 깊숙이까지 들어온 야생이었다. 정원을 활보하는 원숭이들은 걸핏하면 집으로 들어와 먹을 것을 털어 달아났다. 집안 곳곳에는 크고 작은 도마뱀이 진을 쳤다. 옆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얌전한 평소 모습과 달리 뱀을 한 방에 물어 죽이는 야성을 잃지 않았다.
자연 환경은 천지차이였지만 케냐 사람들의 삶은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이 취업난에 시달리듯 케냐의 취업난도 심각했다. 케냐의 신문에는 취업난을 그리는 만평이 실렸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공원과 들판에 누운 채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서울과 마찬가지로 나이로비에도 러시아워가 있다. 도로에서 차량들이 한번 엉기기 시작하면 끝이 없었고, 대중교통은 서울의 ‘지옥철’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저자가 초기에 특히 힘들어했던 것은 ‘폴레 폴레(천천히)’로 대표되는 아프리카 특유의 느긋한 문화였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더할 수 있는 특징은 ‘하쿠나 마타타(문제없다)’다. 무슨 문제에 봉착할 때면 현지인들은 어김없이 ‘폴레 폴레, 하쿠나 마타타’를 외쳤다.
저자는 “코리안 타임이 10분이라면, 여기에선 100분 정도는 너그럽게 눈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약속에 늦게 나오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야단을 치면 “내일 만나면 되지 뭐”라고 말하는 게 고작이다.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로 여기는 마음처럼 좋은 점도 물론 있다. 한 번은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눈 다음 날 차 고장으로 떠나지 못하자 그 사람이 와서 차를 고쳐줬다. 저자가 사례를 하려 하자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은 이미 나의 친구인데 친구끼리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
아프리카는 한국에 비해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저자는 마당 천지에 깔려 있는 작은 벌레를 보고 무섭다고 소리 지르기는커녕 ‘우와’ 하면서 달려들어 ‘예쁘다’며 어루만지는 어린 딸의 모습에서 삶의 이유를 찾는다.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초원을 달리는 사자, 사람을 겁내지 않는 기린과 하마 등도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들이다.
“비가 온 후 맑게 갠 날이면 얼룩말이나 임팔라 등이 길가에 고인 물을 마시러 오는데 그때 자전거를 힘차게 몰아 쫓으면 몇몇 마음 급한 녀석들은 들판으로 방향을 돌릴 생각도 못하고 무작정 길을 따라 나와 함께 나란히 달린다. 마치 사자에게 쫓기는 양 뒷발질까지 하는 녀석들도 있다. 세상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길을 달려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행복한 놈이 틀림없다. 이 행복한 길 위의 주인임에 틀림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