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은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세기는 군사, 20세기 전반은 경제, 후반은 기술이 중심인 사회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는 문화의 시대, 즉 문화영토의 사회가 될 것입니다. 한자를 모르면 동북아 문화권에서 고립될 수 있습니다. 북한조차 고립의 고통을 맛본 후 1990년대 이후 초등학교부터 3000자의 한자를 교육합니다.”
홍 이사장은 “우리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자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은 한자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한자어의 본 뜻을 모른 채 그저 한글로만 쓰다보면 단어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게다가 학술용어나 전문용어는 대부분 한자어이므로 한자를 학습하지 않고는 사회 각 분야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기가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사기’라는 한자어만 27개가 실려 있습니다. 남을 속이는 ‘詐欺’, 기세를 뜻하는 ‘士氣’ 등 한자를 모르고선 어휘력과 국어실력을 갈고 닦을 수가 없는 것이죠.”
홍 이사장은 “한글과 한자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지탱하는 수레의 두 바퀴”라고 했다. 한자에는 단어의 뜻을 쉽게 알게 해주고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표음문자인 한글과 표의문자인 한자가 조화를 이뤄야 우리말이 발전할 것이라고 홍 이사장은 말했다.
홍 이사장은 1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예로 들며 “초등학교에서 한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6∼7월 학부모와 교사 522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학부모의 89%, 교사의 77%가 초등학교 한자교육 시행에 대해 찬성했다. “일본에서도 초등학교에서 상용한자로 1900여 자를 가르치고 있다”고 홍 이사장은 덧붙였다.
홍 이사장은 “한자의 뜻을 파악하면 교과내용에 대한 이해도 빨라지고, 단순 암기만 하던 학습 방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면서 “단어에서부터 개념과 원리를 배우니 공부에 대한 흥미도 붙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자를 마냥 어렵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단어 자체에서 그 뜻과 음을 유추할 수 있고, 그림을 통해 글자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쉴 ‘휴(休·사람 인(人)+나무 목(木))’ 같이 각기 다른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는 단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논리적 사고력도 키울 수 있습니다. 다른 어떤 공부보다 어릴 때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은 이유입니다.”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 우애 등 인성교육을 겸할 수 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예를 들어 효도의 ‘효(孝)’를 배움으로써 학생들은 효에 대한 이치를 깨닫고 생각의 폭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집무실에 걸려있는 액자. ‘文化(문화)의 大衆化(대중화), 知識(지식)의 一般化(일반화),
學問(학문)의 普遍化(보편화)’가 쓰여있다. 홍 이사장은 “대부분의 대학과 기업체는 한자급수시험의 급수 유무에 따라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동아일보와 한국인문사회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전국한자교육추진총연합회가 후원하는 ‘한자능력평가시험’에서도 이런 특성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 이사장은 “이번 한자능력평가시험은 단순히 한자의 음과 뜻만을 묻지 않고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기준으로 수준별 학습능력에 맞게 8개 등급으로 세분화해 평가한다”면서 “특히 100% 객관식으로 진행되는 5급부터 8급의 경우 초중고교 국어, 사회 등 교과과정에서 다루는 한자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출제하기 때문에 학습수준과 일상생활에서의 한자 구사능력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각종 사회문제는 ‘정신’을 잃은 탓이라고 봅니다. 정신의 위기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자능력평가시험에서는 다른 시험과 달리 효와 관련 있는 한자도 출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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