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아는 것과 확실히 아는 것은 다르다. ‘마이동풍(馬耳東風·남의 의견이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버리는 태도)’과 ‘우이독경(牛耳讀經·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 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은 언뜻 보면 의미가 비슷해 보이나 쓰임새가 다르다. 일반 어휘도 중요하지만 한자성어나 관용구, 속담 등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만기 위너스터디 언어영역 강사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사실적 사고에 기초한 시험이라고 해도 암기는 필요하다. 관용적 표현은 꼭 외워 둬야 한다. 일부 관용적 표현은 주어진 상황을 토대로 대략적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관용적 표현에 대해 묻는 문제는 지식(知識)을 측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주어진 지문의 상황과 의미를 분명하게 파악하고, 답지에 제시된 표현 중에서 문제의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항목을 찾아야 한다. 자주 출제되는 관용적 표현은 영어 단어를 외우듯 외워 둬야 한다.
관용적 표현이란 특정한 사건과 연관돼 쓰이던 표현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대로 굳어지거나, 널리 쓰이면서 고정된 표현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관용적 표현으로 속담, 고사성어 등이 있다. 관용적 표현에서 단어 개개의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아울러 ‘발이 넓다’ ‘손이 크다’ 등도 관용적 표현에 해당한다. 두 단어가 합쳐져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본래 ‘봄’과 ‘가을’을 뜻하는 단어가 모여서 이루어진 ‘춘추(春秋·나이)’도 넓게 보면 관용적 표현에 해당한다.
속담은 대체로 교훈을 주거나 풍자를 하기 위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간결한 어구를 가리킨다. 구체적이고 특수한 사례를 말함으로써 보편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격언(格言)이란 금언(金言)이라고도 하며 오랜 역사적 생활 체험에서 이뤄진, 인생에 대한 교훈과 경계 등을 간결하게 표현한 말이다. 속담과 격언을 분명히 구분하기 어려우나, 격언은 속담보다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없고 주로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고사성어는 한자성어 중에서 어떤 유래를 갖고 있는 어구를 가리킨다. ‘관포지교(管鮑之交·管仲(관중)과 鮑叔牙(포숙아)의 막역한 우정을 뜻함)’ ‘조삼모사(朝三暮四·얕은 꾀로 속이거나 희롱함)’ 등이 해당한다. 관용구(숙어)는 어구나 한 문장이 그것을 이룬 각 단어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하나의 의미로 오랫동안 널리 쓰이는 말이다. ‘눈 밖에 나다(마음에 들지 않게 되다)’ 등이 해당한다.
이 시는 ‘남신의주 유동에 있는 박시봉 집에서’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시인데, ‘먼 산 뒷옆에 바위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둠 속에 눈을 맞으면서도 의연한 자태를 유지하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는 자아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평이한 언어로 상실의 체험과 극복을 표현해 일제강점기 말 암흑기에 자신의 무기력함을 반성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기에서 출제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시의 주제와 답지로 제시된 한자성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정답을 고를 수 있는 문제였다.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경우에는 함정에 빠진다.
21. (다)의 화자가 현재 자신의 생각을 바탕으로 정한 좌우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무실역행(務實力行)
② 살신성인(殺身成仁)
③ 유비무환(有備無患)
④ 유유자적(悠悠自適)
⑤ 은인자중(隱忍自重)
이 문제는 시적 화자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적절한 어휘로 표현할 수 있는가를 묻는 문제였다. 시적 화자의 가치관을 이해하려면 시 전체의 어조를 토대로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답지의 한자어와 비교하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한자성어를 웬만큼 아는 학생은 이 문제를 비교적 쉽게 풀었다. 하지만 한자 교육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한자성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였다. 따라서 반응률(%)이 각각 ①17.83 ②12.38 ③12.75 ④19.53 ⑤37.38로 나타났다. 이 문항은 ‘주제의 파악→정제된 표현의 발견’이라는 두 층으로 이뤄졌지만 고난도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한자어가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 학생들은 어려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자성어와 속담 문제는 수능 언어영역에서 항상 출제되므로 매우 중요하다. 제시되는 한자성어나 속담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지를 숙지해야 한다. 제시된 작품의 시적 화자는 고통스러운 상태였지만 자아 성찰을 통해 마음을 다지고 있다. 문제에서는 단순히 셋방에서 지내는 것이 아니므로 ‘마음속에 감추어 참고 견디면서 몸가짐을 신중하게 행동함’의 의미인 ‘은인자중’이 정답이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의미를 쉽게 알 수 있는 한자성어나 속담이라도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문제 풀이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 ①번 ‘무실역행’은 참되고 실속 있도록 힘써 실행함을, ②번 ‘살신성인’은 인(仁)과 의(義)를 위해 목숨을 바침을 나타내는 말이다, ③번 ‘유비무환’은 미리 준비가 돼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음을 나타내고 ④번 ‘유유자적’은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이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사는 삶을 뜻한다.
한 문제를 더 보자. 박지원의 ‘민옹전’에서 출제됐다.
56. ㉠에 나타난 민 영감의 심정을 표현한 것은?
① 비분강개(悲憤慷慨)
② 맥수지탄(麥秀之嘆)
③ 망양지탄(亡羊之嘆)
④ 후생가외(後生可畏)
⑤ 후회막급(後悔莫及)
‘민 영감은 옛사람의 기이한 절개나 거룩한 발자취를 흠모하여, 이따금 의기가 북받쳐서 흥분하기도 하였으며, 그들의 전기를 읽을 때마다 한숨쉬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이를 표현하는 한자성어로 ‘비분강개(悲憤慷慨·슬프고 분해 의분이 북받침)’가 있다. 그러나 오답인 ④번의 반응률은 약 20%였다. ④번 ’후생가외‘는 ‘뒷사람들이 가히 두렵다’는 뜻으로, 자신의 학문에 만족하지 말고 더 부지런히 갈고 닦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②번 ‘맥수지탄’은 고국의 멸망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이다. ③번 ‘망양지탄’은 갈림 길이 매우 많아 잃어버린 양을 찾을 길이 없음을 탄식한다는 뜻으로, 학문의 길이 여러 갈래여서 한 갈래의 진리도 얻기 어려움을 나타낸다. ⑤번 ‘후회막급’은 이미 잘못된 뒤에 아무리 후회해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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