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담아 ‘영화도시락’ 배달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일 03시 00분


女소년원 찾아 영화상영 김경식 청주대 교수
영화 보고 소감 나누다 보면 상처입은 소녀들 “힘이 나요”
“소외계층에 문화세례 절실”…고아원-경로당 등에도 ‘배달’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김경식 교수가 여자소년원인 충북 청주미평여자학교 학생들에게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김경식 교수가 여자소년원인 충북 청주미평여자학교 학생들에게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장기우 기자
“우연히 라디오를 듣다가 동해로 여행을 간 시각장애인들이 소리와 피부로 바다를 느꼈다는 얘기를 듣고 감명받았습니다.” 청주대 공연영상학부 김경식 교수(50·영화전공)는 5년 전부터 ‘찾아가는 영화도시락’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를 통해 소외계층들에게 문화 영양분을 전달하기로 마음먹고 중증장애인 시설과 시각장애인 시설, 보육원, 경로당 등을 다니며 영화를 상영하는 것. 영화 상영 때마다 영화감독이나 연기자가 꿈인 제자들이 동행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대사를 읽어주는 등 재미와 메시지를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김 교수의 제자인 김민하 씨(2학년·감독전공)는 “평소 영화를 접하기 어려운 분들이 영화를 보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같이 행복해진다”며 “그분들에게 오히려 배우는 점이 많다”고 전했다.

○ 희망의 메신저

“자∼준비됐지. 네∼.” “그럼 시작한다. 힘차게 외치자. 레디! 액션.”

지난달 18일 오후 3시 충북 청주시 흥덕구 미평동 미평여자학교 자애관 2층 강당. 운동복을 입은 10대 여학생 40여 명이 가지런히 앉아 김 교수의 힘찬 외침에 한목소리로 화답하자 영화 ‘말아톤’이 시작됐다. 학교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이곳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학교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곳이다. 학교폭력, 절도 등 각종 비행을 저질러 6개월 미만 보호처분을 받은 여학생들을 수용하는 ‘여자 소년원’이다. 김 교수는 3월에 이어 두 번째 이곳을 찾았다. 한순간의 실수로 스스로 상처를 입은 소녀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 “영화로 분노·갈등 조절 배워요.”

이날 여학생들이 본 영화 ‘말아톤’은 다섯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청년 초원(조승우 분)이 엄마(김미숙 분)의 헌신적인 사랑을 받으며 마라톤을 통해 세상과 마주하는 내용으로, 실화를 다룬 영화다. 영화 모티브와 감독, 주연배우 등에 대한 김 교수의 짧은 설명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됐다. 2시간이 조금 안되는 시간동안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크게 웃거나 슬픈 장면이 나올 때면 같이 가슴 아파했다. 영화가 끝난 뒤 최현아 양(17·가명)은 “장애를 가진 엄마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모습에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올 3월 이 학교와 영화작품을 소재로 한 교화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하고 장기운영협약을 했다. 그는 3월 16일 첫 영화도시락으로 ‘애자’를 배달했다. 상영이 끝난 뒤 강당은 눈물바다로 뒤덮였다. 김 교수는 영화 상영 뒤 동행한 영화전공 제자들과 여학생들을 소그룹으로 만들어 질의문답 시간을 갖게 했다.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건전한 정서와 가치관을 찾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또 ‘왕따’나 청소년성매매 등을 소재로 한 영화도 학생들 스스로 제작하도록 했다. 지난달에는 ‘내 친구 순복이’라는 영화를 완성했다. 김지선 양(16·가명)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 대한 영화였는데 가해자에서 피해자 역할을 맡으며 많은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